특정 사건 수사 과정에서 통째로 검찰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됐다가, 나중에 다른 사건 수사에 활용된 정보는 사후에 법원 영장을 발부받았더라도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청탁금지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A씨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16일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엔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 소속 사무과장이었던 A씨는 2018년 원주시청 국장급 간부 B씨로부터 "수사를 지연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요 수사 단서와 영장 청구 계획 등을 알려준 혐의로 기소됐다.
A씨의 범행은 우연히 발각됐다. 2018년 강원 혁신영랑택지 개발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B씨의 휴대폰을 압수한 뒤, 안에 담긴 정보를 통째로 검찰 디지털수사망(디넷)에 저장했다. 이후 이 내용을 살펴보던 중 A씨와 B국장 간 통화내역이 발견된 것이다. 검찰은 개발비리 의혹과 다른 별건으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서 A씨와 검찰은 증거의 위법수집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당시 검찰은 최초 발부된 영장 범위 밖에 있었던 A씨의 녹음파일을 발견한 뒤 한 달이 지나서야 새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를 집행하지 않다가 유효기간이 만료되자 한 달 뒤 재차 영장을 발부받아 파일을 확보했다.
1∙2심은 이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영장 집행 경위와 사안의 특수성 등에 비춰 수사기관이 의도적으로 적법절차를 어긴 것으로 보이지 않고, 3차 영장이 집행된 이후 확보된 녹음파일 복제본 및 관련자 진술 등은 원본과 인과관계가 희석∙단절됐다는 이유다.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검찰은 (본사건과) 무관한 정보를 3개월간 영장 없이 탐색∙복제∙출력하며 수사했다"면서 "3차 영장 집행도, 최초 영장 집행이 종료돼 당연히 폐기돼야 할 전자정보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위법하고, 영장 발부 사실만으로 하자가 치유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녹음파일을 일일이 듣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려 어쩔 수 없었다"는 검찰의 항변도 물리쳤다. 대법원은 "그런 사정이 영장 청구를 지체한 정당한 사유는 되지 못하고, 피고인이 수사기관의 내부자임을 감안해도 그로 인한 증거인멸 우려가 합리적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런 검찰의 '통째 저장' 논란은 최근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수사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에 대한 허위 보도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 대표는 "검찰이 내 휴대폰 포렌식 정보를 나도 모르게 통째로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서는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검찰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이번 판결에 대해 "2022년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한 것으로, 이 사건 당시엔 선별이미지에 대한 등록∙폐기 절차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았다"며 "현재 디넷에 보관된 '전부이미지'는 증거의 무결성∙동일성 등 증거능력 입증을 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사용 중"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