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돈 풀기’ 민생대책

입력
2024.04.26 16:0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누군가를 혼내는 것의 반대 개념은 뭘까. 상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경영학의 동기부여 이론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신상(信賞)과 필벌(必罰)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독립된 개념이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해서, 공을 세운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벌은 벌이고, 상은 상일 뿐이다.

□선거 민심을 정확히 읽는 방법도 그래야 한다. 지난 10일 총선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었다. 몇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도 불통인 권력자에 대한 중도층의 강력한 응징이었다. 하지만 신상과 필벌의 독립관계처럼, 윤 대통령에 대한 응징을 야당에 대한 격려와 칭찬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심지어 개혁신당이 예상 밖의 원내의석을 얻은 건 어부지리 성격이 강하다. 윤 대통령을 싫어하는 유권자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싫어하는 유권자보다 투표 당일 약간 더 많았을 뿐이다.

□입법권력을 쥐게 됐지만, 이 대표는 국제적으로 급진적이라는 딱지가 여전하다. 중국이 아닌, 서구 언론이 특히 그렇다. 그의 정책이 주류 경제이론에서 벗어난 위험한 실험이라고 지적한다. 오래된 얘기지만 2016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집권 가능성을 경고하며 “그가 집권하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이 시장은 경제위기 돌파 해법으로 재벌 해체와 기본소득을 주장하며 일부에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었다.

□한동안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1인당 25만 원씩, 13조 원 푸는 걸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태세였다. 10년 가까이 돈 푸는 걸 핵심 민생대책으로 내놓는 데 환호할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못지않게 많은 시민들은 다른 걸 원한다. 초등학생은 급감하는데 초등교육 예산은 왜 그대로인지, 시골 구석구석에 도로와 교량을 지어대는 상황에 대한 근본 대책을 원한다. 원내 다수당의 1인자라면 인공지능(AI), 인구 감소에 대응할 개혁의 짐도 기꺼이 져야 한다. 의제와 상관없이 이뤄질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만남에서 돈 푸는 걸 넘어서는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