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윤 대통령은 변할까. 총선 참패 이후 사람들 관심은 온통 윤석열 대통령이 바뀔지에 모아졌다. 정권심판 민의가 확인된 마당에 원인 제공자인 대통령의 변화는 당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위기는 ‘192대 108’이란 숫자에 있지 않다. 대통령이 무얼 하려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려 하는 불신에 위기가 있다. 의심 단계를 넘어선 신뢰의 붕괴는 대통령 주변에서 시작된 것 같다. 대통령을 비교적 잘 안다는 검찰과 관료, 정치인들이 먼저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놓고 있다. 대통령과의 경험이 바이어스를 강화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영수회담의 제안, 기자들과 17개월 만의 짧은 문답마저 ‘시늉’이라거나 ‘양두구육’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상황인식, 태도가 불신을 자초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대통령의 여론 대응 매뉴얼은 그 첫째가 남 탓에 가깝다. 이번 담화문, 국무회의 발언에서 나는 옳았는데 국민이 체감하지 못해 선거에 패했다고, 국민에게 불평하듯이 말했다. 총선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지지율 30%에선 공무원이 안 움직이고 20%대라면 권력은 새는 바가지가 된다. 이대로라면 다음은 대통령의 말이 희화화되고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단계다. 불신 고리를 끊으려면 달라진 모습, 태도를 지속해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여권이 공방 중인 배신의 정치는 윤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정치에서 배신은 ‘우리가 남이가’란 기득권 정서, 권력 서열의 표현이다. 이제는 필요하다면 핵심 지지층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이미 세대로는 70대만 남았고 영남도 절반 이상 떨어져 나갔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는 지금도 핵심 지지층이 비판하는 문제다. 그러나 20년 만에 대미 수출이 중국을 넘어 신통상질서가 마련된 배경은 지도자가 시대상황에 필요한 배신을 한 덕분일 것이다.
먼저 야당과의 정치를 재개했다면 그다음은 언론 관계의 정상화이고 그 첫 수순이 기자회견 정례화다. 역대 어느 정권도 언론과의 긴장 관계로 힘들지 않은 적이 없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이 무슨 말만 하면 갈등이고 싸움이 됐다. 이에 비하면 윤 정부의 언론 환경은 매우 우호적이다. 사실 외교도 그렇지만 언론에서 일방통행이란 없고 ‘51대 49’ 정도 유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이 호의적이지 않다고 본다면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2년째 연두 기자회견과 취임 회견을 하지 않고 이를 특정 언론 인터뷰로 대체해 나머지 언론을 ‘물먹인’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우선인 척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은 책자로 제작돼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아무리 비판적 언론이라도 의사소통이 제대로만 이뤄지면 합의된 인식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총선 악재로 작용한 용산발 이슈들만 해도 정상적 기자회견 관행이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언론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데 이종섭 대사 임명을 강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판단 과정에서 언론을 빼다 보니 민심과 멀어지는 자충수를 피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영부인 문제를 취재 성역으로 놔두는 것도 후과만 키우는 일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왜 임기 중 자식들을 검찰에 출두시켰겠나.
사람들은 새로운 인식에서 오는 불편함보다 기존 것에서 받는 확신과 편안함을 좋아한다. 한 경영학 교수는 이를 윈도95 사용자를 비웃으며 1995년 인식을 붙잡고 있는 격에 비유했다. 대통령이 이런 정신적 구두쇠가 돼선 안 된다. 한 소셜미디어 자기소개에 대통령은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 윤석열입니다”라고 적었다. 그 민심이 2년 만에 그를 심판했다. 민심의 파도는 타고 넘어야지 싸워서 이길 순 없다. 나를 믿고 따르라는 방식도 더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기자회견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내달 10일 대통령 취임 3년 차가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