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마저 떠나면 어쩌죠? 지쳐도 너무 지칩니다."
25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외래항암약물치료센터'에 예약 확인을 하고 진료 대기석으로 돌아온 40대 A씨가 2시간을 기다리라는 통보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를 만나기조차 힘든 병원에 비하면 그나마 낫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A씨는 "대체 두 달 넘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다른 대형병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품에 안고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윤모(40)씨는 "아기가 출생 때부터 콩팥이 좋지 않아 추적 검사를 하고 있다"며 "교수님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사직 얘기가 돌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집단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 의료 현장의 최후 보루인 교수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던진 사직서의 효력은 이날부터 발생했다. 정부와 병원 측은 정상적 절차가 아니라며 일부 사직서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의정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애꿎은 피해만 보고 있는 환자들의 두려움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날 둘러본 서울 '빅5' 병원은 여전히 한산했다. 진료 축소를 한 지 오래라 불편은 일상이 됐으나 갑자기 진료가 거부되는 등의 돌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 병원 관계자는 "아직은 평소처럼 진료가 이뤄지고 있지만, 교수들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한 교수도 "특별한 집단행동은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어도 교수들까지 떠나면 환자들이 갈 곳이 아예 사라져 다들 걱정하는 눈치"라고 귀띔했다.
환자들 사이에선 이제 분노를 넘어 체념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어머니의 심장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정모씨는 "사태가 나아질 조짐이 안 보여 착잡하기만 하다"며 한숨 쉬었다. 직장인 이모(27)씨도 "치아 아래 물혹이 생겨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마취과 전공의가 없어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다"면서 "일정을 물어봐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아 불안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법적으로 의대 교수들의 사직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전날 "사직서 수리가 안 됐는데 사직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일방적으로 사표 냈으니 출근 안 한다, 이렇게 무책임한 교수님들도 현실에서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사직 말고도 '휴진' 등을 이용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빅5 병원 중 4곳(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이 이미 휴진 방침을 세웠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30일 하루 휴진하고, 연세대 교수들은 30일을 시작으로 매주 한 번씩 휴진할 계획이다. 장범섭 서울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이날 "2,000이라는 숫자에 목맨 증원은 의료재정을 더욱 고갈시키고 각종 불필요한 진료로 환자들은 제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종로구 병원 진료실 문 앞에 붙여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