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재 장기요양 환자의 부정수급을 문제 삼아 산재보험 제도에 대한 대대적 감사에 이어 제도 개편에 나선 가운데, 산재 요양 장기화 문제를 해소하면서도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려면 '상병별 표준 요양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다. 아울러 일부 부정수급 사건을 들어 무고한 산재 노동자까지 '카르텔'로 몰아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한국노총은 25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산재 노동자가 바라보는 산재보험 제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연말 두 달간 느슨한 산재 승인과 요양 관리로 '산재 카르텔'이 발생했다며 특정감사를 벌였다. 이어 올해 1월부터는 전문가 중심의 '산재보상 제도개선 TF'를 구성해 산재 신청·승인 및 요양 제도 개편 등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정부의 '카르텔 몰이' 이후 재요양 승인이 지연되거나 문턱이 높아지는 등 애꿎은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최근 발표된 한국노총 설문조사에서도 산재 노동자 셋 중 한 명(36.1%)꼴로 특정감사 이후 부당한 산재 판정 결정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민동식 전국산재장애인단체연합회 회장은 "정부가 실체 없는 산재 카르텔을 운운하고 산재 환자들을 나이롱 환자로 매도한 것은 선량한 산재 노동자와 그 가족을 두세 번 죽인 만행"이라며 성토했다. 그는 당사자 중심 산재 관련 위원회 활성화, 간병료 및 간병급여 현실화 등을 촉구했다.
환자 회복 단계마다 의료기관이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요양 지침을 담은 가이드를 마련해 장기요양의 문제적 실태를 개선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앞서 고용부는 전체 산재 요양환자 중 6개월 이상 장기요양 환자가 절반(48.1%·2017~2023년 평균)에 달한다며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없는 게 주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제안자인 원종욱 연세대 의대 산업보건연구소장은 "산재 환자 요양기간이 필요 기간보다 길다는 것은 산재보험 자원의 낭비를 뜻하므로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 기저에 도덕적 해이 이상의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산재 환자 요양기간이 같은 질병의 건강보험 환자보다 긴 것은 높은 중증도, 직장 복귀가 가능할 때까지 회복 및 재활을 하게 되는 점, 산재 이후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려는 심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원 소장은 고용부가 언급한 '표준요양기간' 설정에는 회의적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같은 상병이어도 산재 노동자 직업에 따라 필요한 요양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허리를 삐는 요추염좌도 사무직 노동자는 늦어도 7일 내 직장 복귀가 가능하지만 서서 일하거나 허리 부담이 있는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더 긴 요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일률적 기간을 정하기보다 단계별 치료 요양 가이드를 만들어 놓으면, 그에 기반해 근로복지공단도 의료기관이 도덕적 해이 없이 제대로 된 치료를 하는지 등을 확인·점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