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도 '사이버도박'에 빠졌다. 스마트폰으로 온 광고성 문자메시지에 넘어갔다. 1만 원밖에 안 썼지만 온라인 카지노와 슬롯머신 등을 이용한 엄연한 도박이었다. 단순 게임인 것처럼 호기심을 자극해 어린 초등생까지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사이버도박의 폐해가 도를 넘어섰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실시해 2,925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619억 원을 환수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온·오프라인상 도박범죄 근절을 위해 사이버수사와 형사 등 각 분야가 협업해 단속을 이어왔다.
전체 검거 인원 3분의 1이 넘는 1,035명이 19세 미만일 정도로 도박은 청소년층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실명 명의의 계좌나 문화상품권만 있으면 간단한 회원 가입을 거쳐 도박사이트 이용이 가능해 도박을 그저 게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연령별로는 고교생 798명, 중학생 229명, 대학생이 7명이었다. 초등학생도 2명이나 있었다.
청소년들은 주로 '친구의 소개'(498명)로 사이버도박에 발을 들였다. 취미를 쉽게 공유하는 또래 문화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메시지 등의 광고를 보고 도박에 손을 댄 이들도 372명이나 됐다. 국수본 관계자는 "학교에서 도박범죄 예방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라며 "사기범죄 의심 문자메시지 최소화 방안을 관련 부처 및 기관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도박 종류별로는 '바카라'(434명)를 가장 탐닉했다. 카드 두 장을 더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우면 이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규칙 탓에 접근도가 높았다. 대전에서는 규칙이 단순한 홀짝, 사다리, 페널티킥 등을 만들어 청소년 33명을 유혹한 도박사이트 운영자 등 일당 8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어 스포츠도박(205명), 온라인카지노(177명), 파워볼·슬롯머신(152명) 순이었다. 수요자에 그치지 않고 도박사이트를 직접 운영·광고하거나 대포물건을 제공한 청소년도 23명이 적발됐다. 경찰은 이번 단속에서 1,000개 넘는 청소년 명의의 계좌가 도박자금 관리에 사용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경찰은 궁극적으로 도박사이트와 연계된 범죄수익 카르텔 와해를 목표로 수사 대상을 넓힐 방침이다. 국수본은 다음 달부터 6개월간 △도박 프로그램 개발 △서버 관리 △도박 광고 △고액 상습 도박행위자 등을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을 고려해 도박사이트 운영 등 공급을 창출하는 고액·상습 도박 행위자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영화 '타짜'의 대사까지 인용하면서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영화 주인공 고니의 스승인 편경장은 "도박은 아예 모르는 게 약이지"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 단속만으로는 청소년의 도박사이트 접근을 원천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 인터넷사업자, 지역사회 등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