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쟁당국이 근로자의 동종업계 경쟁사 이직을 막는 '비경쟁 계약' 관행에 철퇴를 내리기로 했다. 영업 비밀 보호나 고객 유지를 위해 기업들이 미국 내 근로자 수천만 명과 이런 계약을 맺고 있으나, 이는 경쟁 저해 행위로 혁신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깎아내린다는 시각이다. 다만 재계에서 "과도한 규제"라며 소송을 예고한 상태라 시행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날 위원 5명 중 민주당 소속 3명 찬성, 공화당 소속 2명 반대로 비경쟁 계약 금지 규정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새 규정에 따르면, 고용주가 근로자와 근로 계약을 맺을 때 '퇴직 후 일정 기간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하지 않는다'는 등 비경쟁 계약 조항을 삽입하는 건 불법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이런 계약을 체결한 사업장은 근로자에게 해당 계약이 무효임을 고지해야 한다. 다만 비영리단체 등의 근로 계약에는 새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1년 취임 직후부터 줄곧 비경쟁 계약의 철폐를 추진해 왔다. 노동자의 이직을 막는 관행이 급여 인상과 창업을 억제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박탈한다는 시각이다.
비경쟁 계약 관행은 기술 분야 업종은 물론, 금융·의료·미용·오락 등 서비스업종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FTC는 "미국 내 근로자 중 3,000만 명이 비경쟁 계약을 맺고 있다고 추정된다"고 밝혔다.
FTC는 비경쟁 계약 금지로 △새 일자리 3,000만 개 창출 △노동자의 연간 평균 급여 524달러(약 72만 원) 인상 △매년 8,500개 이상 스타트업 탄생 △향후 10년간 매년 평균 1만7,000~2만9,000개의 추가 특허 등록 등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나 칸 FTC 위원장은 투표 직후 성명을 통해 "미국인들이 새로운 직업을 추구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규정은 연방 관보 게재 후 120일 이후에 발효되지만,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다툼도 불사하고 있어 실현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비경쟁 계약 없이는 회사의 영업 기밀을 보호할 길이 없다는 게 재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또 근로자가 경쟁자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근로자 교육·훈련 등에 투자할 수 있다고도 비판한다.
미국상공회의소는 FTC의 새 규정에 반대하며 소송을 예고했다. 규제 집행 기관인 FTC가 새 규정을 제정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취지다. 닐 브래들리 상공회의소 수석정책관은 "이 규칙은 FTC가 경제의 모든 측면을 세세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FTC는 의회가 부여하지 않은 규정 제정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