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전형적인 제한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불과 5년 만에 벌어진 국지전이 공산과 자유진영의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는 걸 미국이 꺼린 탓이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목표로 삼았던 미국의 태평양전쟁과 달리 전쟁 범위는 한반도로 한정됐다.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갑작스러운 해임도 제한전과 관련된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일방의 승리가 불가능해지자 강대국 결정에 따른 휴전이 성립돼 7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불투명한 종식과 관련해 전쟁 전문가나 외교가, 싱크탱크 등에선 '한반도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두 전쟁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분석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푸틴의 복심인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도 이를 시사한 적이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다. 우크라이나는 점령지에 대한 러시아군의 전면 철수를 요구한다.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을 통한 안전보장 없이는 휴전도 종전도 없다는 입장이다. 자주 외신 회견을 갖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전쟁 종식과 관련한 한반도 시나리오 질문엔 격한 반응을 보여왔다. 항전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기왕의 인적 경제적 손실에 비춰 정치적 존립 기반이 흔들릴 양보나 다름없다.
문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의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다. 미국과 유럽 국민의 우크라이나 지원 지지가 갈수록 하락하고, 서방 지원이 예전만 하지 못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10월 미 하원에 올라온 1,050억 달러 지원 법안도 지난 24일에야 겨우 미 의회를 통과했다. 당초보다 40% 쪼그라든 608억 달러(약 84조 원)다. 전쟁 2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 정부 길들이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원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러시아군의 전열은 강해진 반면 인적 자원은 물론 포탄이나 미사일 등 무기, 방공망에서 절대 부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선 패전 위기감 또한 적지 않다. 미국의 지원 지연엔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강경파 반대가 발목을 잡은 탓이 크지만 빠른 종식을 호언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입김도 작용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우크라이나 국민도 “트럼프의 대선 승리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우려와 관심을 표한다. 한국전쟁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원치 않는 휴전 협상에 대한 반발로 반공포로를 석방 했듯이 젤렌스키 대통령 또한 서방과 러시아 주도의 원치 않는 협상에 대해선 러시아 본토에 대한 대담한 공격 등 확전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휴전 또는 전쟁 종식 협상 자체는 늘 그렇듯이 고차 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고, 지정학적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2년 이상 끌었던 한국전쟁의 휴전 협상과 ‘땅따먹기’ 소모전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미래는 더 가늠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