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란에 빛바랜 케밥 외교… 튀르키예 간 독일 대통령에 '질타'

입력
2024.04.23 14:30
양국 관계 상징 '케밥' 공수해간 대통령
현지 도착하자마자 "살인자 독일" 시위

튀르키예를 국빈 방문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환대는커녕 "집단 학살 지지자"라는 현지 시위대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양국 간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겠다며 튀르키예 전통음식 케밥 재료를 독일에서부터 공수해가는 '케밥 외교'까지 준비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에서 독일은 이스라엘 편에, 튀르키예는 하마스 편에 서 있어 벌어진 일이다.

독일 대통령 "경제 성장, 튀르키예 덕분... 감사"

독일 대통령실과 독일 언론 타게스슈피겔 등에 따르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독일·튀르키예 수교 100주년을 계기로 22일(현지시간) 사흘 일정으로 튀르키예를 찾았다. 그는 2017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튀르키예인에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1960년대 독일의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튀르키예 출신으로 메웠고, 현재도 독일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내 튀르키예 출신 인구는 300만 명에 달한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그들(독일 내 튀르키예인)이 이민자 배경을 가진 게 아니라 독일이 이민자 배경을 가졌다"며 "우리가 여기(튀르키예)에서 보고 듣는 것은 튀르키예 역사의 일부이자 독일 역사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 케밥을 준비했다. 튀르키예 전통음식 케밥은 튀르키예 인구 유입과 함께 독일 전역에 퍼지게 됐고, 독일인의 국민 음식으로 보편화했다. 양국이 인적 교류를 바탕으로 사회문화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본 것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케밥 대접'을 위해 튀르키예 출신 할아버지를 둔 독일의 유명 케밥 요리사인 아리프 켈레스를 일정에 대동했다.

케밥 외교 비판에 시위대 비난까지...

그러나 케밥 외교는 순탄치 않았다. 당장 저렴한 패스트푸드이자 튀르키예인의 노고를 상징하는 케밥을 '접대용 음식'으로 포장한 것 자체가 모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50여 명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에게 "집단 학살 지지자" "살인자 독일" 등 구호를 외쳤고,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보다 그의 정치적 대항마로 거론되는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을 먼저 만난 것도 양국 간 긴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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