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지지율이 왜 이렇게 높아?" 총선 한 달 전 가족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아빠가 맞장구를 쳐줄 줄 알았는데 아빠가 예상치 못하게 진지한 장문의 답을 보내왔다. "과오에 비해서 너무 많은 희생을 했다고 생각해. 사실이 아닌 부분까지 힐난하니까 해명을 하려면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부모 된 입장으로서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고."
뭔가 말을 보태려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그만뒀다. 수험생 때 아빠가 유학도 못 보내주고 하면서 미안해했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 내고 한참 동안 갚았는데 우리집이 왜 조국 대표를 불쌍해할까' 하는 생각과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조국혁신당은 정권 심판이라는 구도 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커다란 민심이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어딘가 찝찝한 건 정권 심판을 하겠다는 야당에는 과연 어떤 자격이 있는지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한 기준을 낮췄고 어떤 정책과 기조로 다른 미래를 설계하고 제시할 건지 물어보지 않았다.
야당은 선거 내내 대통령의 대파 발언 논란을 키우며 네거티브 선거를 반복했고 한동훈 특검이나 김건희 특검 등 보복성 공약을 내세웠다. 조국혁신당은 국회 임기가 시작되면 첫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을 발의해서 자녀 논문 대필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 입시 비리에 대한 책임 있는 반성 없이 '상대도 똑같이 잘못했다'며 국회 임기를 시작하겠다는 거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절망하며 조국 사태 때 피켓을 들었던 청년 세대가 어떤 토대 위에 사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선거 다음 날에 대학생인 동생과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말했다. "사실 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거도 부담스럽거든. 투표하려고 시간 내는 게 힘들어. 솔직히 누가 당선되든 내 삶이 좋아지는 건지 모르겠고." 정권 심판을 했다는데도 기쁘거나 화가 나지 않는 이유, 정부와 여야의 권력 구조가 개편돼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 거라 기대도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권 심판도 검찰 개혁도 과거의 정치 지형에서 되풀이되는 구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미래의 지형을 그리는 정치다. 정치에 무엇을 바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정치로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땠나. 정당들의 차이점은 어느 때보다 희미했다. 저출산 대책도 없고 부동산 격차를 해소하고 세입자를 보호하는 안전망 논의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줄 일자리 정책에 대한 논의도, 노후를 대비할 토대가 될 국민연금에 대한 약속도 없다시피 했다. 이제는 당연한 조건이 된 기후위기도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번 선거가 '이대로 하면 된다'는 단순한 결과로 요약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까지 찍을 데가 없어 투표를 포기하고 싶었던 무당층 유권자가 있다는 것, 이들에게 응답해야 한다는 걸 새로운 국회가 잊지 않길 바란다. 투표는 정치의 전부가 아니라 과정이고 시작이니까 말이다. 4년 동안 우리 가족의 채팅방도 꽤 시끄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