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야기한 미국 대학가 내 친(親)팔레스타인 시위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컬럼비아대에서 학생 10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된 지 나흘 만에 예일대와 뉴욕대(NYU)에서도 수십 명이 무더기 연행됐다.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던 학생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면서 오히려 일파만파 번지는 양상이다. 반(反)유대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도 여전히 뜨겁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오전 코네티컷주(州)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캠퍼스 안에서 시위하던 사람 중 최소 6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 19일부터 예일대 총장실 인근 비네케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었다. 비네케광장은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차별 정책)'에 항의했던 역사적인 캠퍼스 시위의 장소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시위를 주도한 '비네케를 점거하라' 측 요구는 "예일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는 업체에 대한 투자 내역을 공개하고, 이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같은 날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건너편 농성장에서 400여 명의 시위대도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뉴욕대 졸업생 크리스 립먼은 "우리 요구는 학교 돈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개하고, 만약 그 돈이 대량학살을 하는 데 쓰인다면 당장 처분하라는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30분쯤부터 농성장의 텐트를 철거하고 해산에 나섰다. 경찰 명령에 불응한 시위자들은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호송 차량에 실려 연행됐다.
미국 대학가에서 급속히 확산 중인 친팔레스타인 농성 시위는 지난주 컬럼비아대에서 처음 시작됐다. 네마트 미노슈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이 지난 17일 미국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 척결 의지를 밝힌 직후다. 당시 컬럼비아대 학생들은 캠퍼스 잔디밭에 '가자지구 연대 야영지'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텐트 수십 채를 치고 시위에 나섰다. 학교 측의 요청에 학내로 진입한 경찰은 지난 18일 100명 이상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이는 반전 시위가 거셌던 1968년 이래 가장 많은 컬럼비아대 학생이 체포된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이로부터 4일 만에 또다시 교정에서 학생들이 대규모 체포·연행되면서 시위의 불길은 더 거세졌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터프츠대, 에머슨대 등 보스턴 지역뿐 아니라 미시간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등 미 전역의 대학으로 점거 시위가 번지고 있다.
경찰이 신속히 개입했지만 학내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 혐의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반유대주의로 오도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진보 성향의 미국 유대인 단체 '평화를 위한 유대인 목소리' 소속 재커리 헤링(33)은 "시위는 반유대주의가 아니었고, '시온주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운동)'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시온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의 그릇된 행동은 반유대주의라는 비판의 빌미를 남기기도 했다. NYT에 따르면 학교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종종 격렬한 반유대주의 구호를 외치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시위대로부터 조롱을 당하거나 팔레스타인 국기로 눈이 찔리는 등 괴롭힘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유대인 학생들은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다. 컬럼비아대 유대인 신입생 니컬러스 바움(19)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날려버려야 한다는 시위대 말을 들었다"며 "시온주의에 대한 비난이 유대교에 대한 비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AP에 말했다.
여파는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의회 청문회에서 샤피크 총장을 압박했던 공화당 의원들은 학내 혼란을 이유로 그의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컬럼비아대 일부 교수진도 성명을 내고 학내에 경찰을 불러들인 학교 당국을 비판해 파장은 확산일로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