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들소가 살아 움직일 듯...몰입형 전시 원조는 '동굴'에 있다

입력
2024.04.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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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시와 현대의 몰입형 미술-극과 극은 통한다

편집자주

좋은 예술 작품 한 점엔 질문이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양정무의 미술 읽어드립니다'는 미술과 역사를 넘나들며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미술 지식 큐레이터'가 되어 그 질문에 답하는 연재입니다. 격주 목요일에 같이 미술 읽어 보실까요


"이것 봐 아빠, 황소 그림이야!(¡Mira, papá… bueyes pintados!)"

여덟 살 난 마리아가 놀라 소리쳤다. 1879년 여름 아마추어 고고학자 돈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는 딸 마리아와 함께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을 탐험 중이었다. 몇 번 갔던 동굴이지만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황소 그림을 딸이 발견했다. 높이 2m 정도의 낮고 어두운 동굴 천장에 황소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키 작은 어린 마리아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을 때 '인류의 최초의 그림들'이 현대인의 눈에 들어오게 됐다.

이 동굴 소유자인 사우투올라는 이 그림들이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당시 학계는 그의 주장을 단박에 무시했다. 알타미라에서 발견된 그림들이 원시인이 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잘 그렸을 뿐만 아니라 색채까지 생생해서 도저히 수만 년 전 그림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사우투올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세기 후반부터 비슷한 동굴 유적이 유럽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구석기 미술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3만 년 전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알타미라 동굴 유적은 스페인 북부 해안의 산탄데르(Santander)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동굴 입구가 무너진 시점이 대략 1만3,000년 전이기에 벽화들은 그보다 훨씬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부는 3만 년 전에 그려졌다고 하니 정말 까마득히 오래전 구석기시대 그림이다.

아쉽게도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현재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와 사람들로 인한 동굴 내 온도·습도 변화에 의해 벽화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인근에 있는 알타미라박물관에 만들어진 복제 벽화를 통해 원작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고 한다. 필자는 알타미라 벽화를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복제품으로 봤을 뿐이다. 비록 복제라 해도 너무나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지기에 갑자기 몰려든 학생 단체의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숨죽이며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알타미라 벽화뿐 아니라 구석기 동굴벽화 중 채색벽화들은 보존 문제 때문에 대부분 일반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다. 목탄으로 그리거나 돌로 그어 그린 벽화 중 일부는 공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필자는 이 중 프랑스 남부 베제레 계곡에 있는 루피냑 동굴벽화를 봤다.

루피냑은 1만3,000년 전 구석기인이 목탄과 손으로 그린 벽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코끼리기차 같은 전동 기차를 타고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단체로 벽화를 관람했다. 동굴 길이가 10㎞나 돼 도보 관람은 불가능한데, 그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림을 그린 구석기인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루피냑은 매머드 그림으로 유명한데, 동굴 안에 들어가면서 안내원이 비추는 조명에 따라 매머드 무리를 그린 그림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큰 방에는 순록 떼와 매머드, 그리고 말과 황소들이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스케일은 컸고 필선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원시 동굴벽화에 숨어있는 인간의 창조성

원시 동굴벽화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다 보니 점점 더 구석기 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재치라고 할까? 유머가 넘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놀라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 '인간 종에게는 창조성의 유전자가 원초적으로 내재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굴에 그린 그림들이 한결같이 동굴의 장소적 특성을 기가 막히게 살려내기 때문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떼들은 돌출된 암반 위에 한 마리씩 자리 잡고 있어 그림이라기보다는 3D 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전체를 이어서 보면 연속적으로 움직이기에 쇼트폼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그림 규모도 대단해서 화면 속 동물의 크기가 거의 실제 동물의 크기만 하다. 이런 거대한 그림을 동굴 천장과 벽면 가득 생동감 있게 그려 넣은 원시인들은 놀라운 화가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단순히 유희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생존의 염원을 담은 듯 힘껏 그렸기 때문에 그림이 발산하는 기운도 강렬하다.

눈여겨볼 지점은 어마어마한 구석기 벽화들이 깊은 동굴 속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등잔불이 일렁이는 환경에서 구석기 벽화를 봤을 원시인들 눈에는 그림이 살아 숨 쉬는 듯 생동감 있게 보였을 것이다. 혼자 소리쳐도 수백 명의 울림처럼 들리는 동굴 특유의 음향 효과까지 더해졌을 때의 신비로움은 극에 다다랐을 것이다.

구석기인들이 사냥과 채집으로 삶을 영위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들의 미술적 덕목을 빠뜨려선 안 된다. 그들은 그저 사냥꾼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세계를 표현해 낼 줄 알고 그것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결국 구석기인의 동굴벽화는 살아 숨 쉬는, 실제 같은 그림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허상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넘어 진짜를 재인식하게 하는 초과실재의 세계를 구석기 원시인들은 미술을 통해 능숙하게 연출했다.

동굴벽화와 몰입형 전시는 닮았다?

본래 미술은 이렇게 태초부터 몰입도가 높은 방식으로 구현됐고, 미술을 통해 인류는 한 차원 높게 도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시 동굴벽화의 다채로운 효과를 나열하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몰입형 전시(Immersive Art Exhibition)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수십~수백 개의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이용해 전시 공간의 벽면, 천장, 바닥을 영상과 음향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미디어 전시가 대중적인 전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전시가 몰입을 강요하듯 유도한다는 점 때문에 "감각적인 영상과 음향으로 상업적 효과만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대의 몰입형 전시가 만들어내는 시청각 효과가 원시인 동굴벽화의 효과와 많이 닮아 있기에 보다 거시적인 시선으로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둘 사이엔 차이점도 많다. 원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육중한 야수의 세계를 박진감 있게 그렸다면, 현대인들은 주로 오래전에 유행한 회고적 미술들을 신기술에 탑재해 대형 화면을 통해 즐긴다. 또한 원시인들이 동굴벽화를 보기 위해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수백 미터를 이동해 동굴 속으로 조심히 들어가야 했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입장료를 내고 화면을 여유롭게 감상한다.

하지만 이미지를 즐기고 예찬한다는 점은 원시인이나 현대인이나 다르지 않다. 현대인들의 미술 관람 태도는 세속적인 반면, 원시인들은 미술에 제의적 태도를 취했다고 굳이 구별 짓기보다는 '원래 미술은 이렇게 몰입적일 때 메시지가 극대화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테크놀로지에 무엇을 올리느냐가 문제이지, 몰입형 전시 방식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원래 호모사피엔스에게 미술은 몰입형으로 설정돼 있다는 점을 원시 구석기 벽화는 단호하게 보여준다.

※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한국 최고의 미술 안내자로 꼽힙니다. 원시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지은 책으로 '벌거벗은 미술관' '난처한 미술 이야기 1~7' '상인과 미술'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등이 있습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KBS '예썰의 전당' 등 교양 예능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는 양 교수는 '미술 분야 섭외 1순위'입니다. 앞으로 격주 목요일마다 '양정무의 미술 읽어드립니다'로 한국일보 독자들을 찾아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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