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이 미국, 일본 제작사들이 만드는 작품에 하청 업자로 참여해 외화를 벌어들인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2일(현지시간) 북한의 한 인터넷 클라우드 서버에서 이 같은 정황이 담긴 파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매체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서버가 설정 오류로 인해 지난해 말부터 비밀번호 없이도 일부 파일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해당 서버에는 미국 및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최근 작품과 관련된 그림 파일이 업로드돼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 본사를 둔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카이바운드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인빈시블 시즌 3', 미국 메릴랜드주 소재 유닉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카툰네트워크와 HBO 맥스에서 방영될 예정인 '이야누-차일드 오브 원더', 올여름 방영 예정인 일본 애니메이션 '마도구사 달리아는 고개 숙이지 않아' 등이다. '고양이'란 명칭의 파일엔 일본 홋카이도의 제작사 '에카치에필카'의 로고가 삽입돼 있었다.
일부 파일에는 '캐릭터의 머리 모양을 다듬어 달라' 등 중국어 작업 지시문이 한글로 번역돼 있기도 했다. 미·일 제작사의 하청을 받은 중국 업체가 북한 애니메이션 제작자에게 재하청을 주며 소통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고 매체는 해석했다.
재하청에 참여한 북한 기관으로는 평양 소재 '4·26아동영화촬영소'가 거론됐다. 1957년 설립된 이 기관은 1960년 북한의 첫 아동영화 ‘신기한 복숭아’를 제작한 이후 ‘소년장수’ ‘고주몽’ ‘영리한 너구리’ 등을 창작한 북한 만화의 산실이다. 현재는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올라와있다.
또한 대부분의 서버 접속 인터넷주소(IP)는 가상사설망(VPN)으로 추적이 어렵게 바뀌어 있었으나, 일부 중국 동북 지역에서 접속한 IP 기록도 확인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단둥, 다롄, 선양 등 지역은 북한 해외 정보기술(IT) 노동자들의 거점이다.
38노스는 "북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하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미국, 일본 등의 '원청회사'들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며 "중국어로 제작 관련 지시들이 전달된 것을 보면 하청이 여러 단계에 걸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썼다. 앞서 미국은 2022년 원격 계약을 통해 하청업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북한 IT 노동자들을 부주의하게 고용함으로써 미국 독자 대북 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를 위반할 위험이 있다고 자국 업계에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