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무 철학은 무용수를 살아 있는 감정의 형체로 만들어 발레를 인간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갈망, 낙심, 행복을 들여다보려고 극장에 가니까요."
1973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함부르크 발레단의 단장이자 수석 안무가를 맡고 있는 세계적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85)가 한국을 찾았다. 국립발레단이 국내 초연으로 다음 달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그의 안무작 '인어공주' 지도를 위해서다. 그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 안무 원칙이 잘 반영된 '인어공주'는 국립발레단과 함께하는 첫 작품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인어공주'는 2005년 덴마크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단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해피엔딩과는 다른 안데르센 원작의 비극적 결말을 충실히 표현했다.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는 젊은 남성 에드바드를 사랑해 시련을 겪은 안데르센의 자전적 에세이"라며 "금지된 사랑이 주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어공주가 사랑을 위해 자기 왕국을 벗어나 희생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서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해도 상대가 나를 사랑할 책임은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에는 안데르센의 분신이자 극을 이끌어 가는 캐릭터인 시인이 등장한다. 극은 에드바드의 결혼식에 참석한 시인의 눈물이 바다에 떨어지며 시작된다. 그는 "눈물방울이 바다에 들어가 시인의 영혼이 체화된 인어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출신의 노이마이어는 발레의 전통적 미학과 현대 예술의 극적 요소를 결합해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세계적 발레 단체의 객원 안무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197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시절인 1999년 이 작품의 마르그리트 역을 맡아 동양인 최초로 '브누아 드 라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노이마이어는 "역할의 감정 구조 이해에 관심을 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훌륭한 해석자였다"고 강 단장과의 작업을 돌아봤다.
안무가가 되기 전 화가의 꿈을 품었을 정도로 미술에도 재능이 있는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의 무대, 조명,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안무가의 일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며 "나는 무용수라는 인간을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의 꼬리지느러미를 일본 전통 의상 하카마에서 영감을 얻어 표현하는 등 일본 전통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인생을 통틀어 지난해 8월 첫 방문을 포함해 한국에 머문 시간이 5일뿐이어서 한국 전통 문화는 접할 기회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노이마이어는 내년에 함부르크 발레단 단장직은 내려놓을 예정이지만 안무가 활동은 계속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아직 창의력의 최고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