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의 최대 화두인 '재정 안정'과 '소득 보장' 중 시민들은 소득 보장에 힘을 실었다. 17년 만의 연금개혁에 나선 국회가 이를 반영해 현재 소득의 9%인 보험료율과 2028년 40%로 낮아지는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을 동시에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기금 고갈 이후 연금 재정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22일 발표한 시민대표 492명의 숙의토론 이후 최종 설문조사 결과는 '더 내고 더 받기'로 압축된다. 56%가 소득 보장을 강화한 ①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지지했다. 재정 안정에 방점을 찍은 ②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을 택한 시민대표는 42.6%다.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가 ±4.4%포인트라 두 안의 차이 13.4%포인트는 오차범위 밖이다.
이달 13일부터 주말에 총 4일간 숙의토론회가 진행되기 앞서 실시된 1차 설문조사에서는 ②안이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시민대표단이 학습과 토론을 거치면서 ①안 찬성으로 선회한 것은 소득 보장 진영의 논리가 통했다는 방증이다. 소득 보장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토론회 과정에서 "연금의 목적은 기금 유지가 아니라 국민 노후 보장" "국고 투입 등으로 재정 안정 추구 가능" 등을 주장했다. 반면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기금 유지 필요" "가입 기간 연장이 보장성 강화에 더욱 효과적" 등을 제시했다. 공론화위 관계자는 "최종 조사에서 시민대표단이 소득 보장론을 더 많이 지지한 구체적인 이유를 분석해 곧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참여연대를 비롯해 300여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이날 공론화위 발표에 대해 "국민연금 본연의 기능인 모든 세대의 노후 빈곤을 예방하기 위한 개혁의 첫 단추가 채워졌다"며 "국회는 공론화 결과에 따른 연금개혁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 개혁은 지금까지 단 두 번뿐이었다. 1998년 1차 개혁 때 소득대체율이 70%에서 60%로 하향됐고, 2007년 2차 개혁을 거쳐 40%까지 낮아졌다. 모두 기금 고갈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21대 국회에서 3차 개혁이 이뤄진다면 소득대체율이 다시 50%로 반등하는 개혁안이 유력해졌다. 보험료율이 함께 오른다면 1차 개혁 때 9%로 인상된 이래 26년 만에 조정되는 것이다.
시민대표단이 숙의토론을 시작하기 전부터 재정 안정 진영에서는 "답이 정해졌다"는 반발이 거셌다. ①안과 ②안은 보험료율 차이가 1%포인트인데 반해 소득대체율은 10%포인트나 격차가 있어서다. 또한 ①안은 더 많이 받는데도 기금 고갈 예상 시점이 2062년으로 ②안(2063년)과 고작 1년 차이에 불과하다. 상식선에서 시민들이 ①안을 택할 여지가 많다는 주장이었다.
재정 안정 전문가들은 현 제도 대비 ①안의 경우 2093년 '누적적자'가 702조 원가량 추가되고 ②안은 1,970조 원 정도 줄어드는데, 이런 자료가 시민대표단에게 제공되지 않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의제숙의단에 재정 안정 쪽 전문가들이 배제돼 소득대체율을 고정하고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는 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며 "연령 비율로 대표단을 선정해 미래 세대인 청년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공론화위는 대표단 선정과 의제 설정 등 모든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했다는 입장이다. 김연명 공론화위 위원은 "양측 의사를 판단할 만한 모든 객관적 정보들이 충분히 제공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