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전장 개념을 허문 19~20세기 전쟁

입력
2024.04.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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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게르니카 폭격

19세기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은 대형 풍선을 활용해 베네치아 상공에 폭탄을 투하했다.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의 방향 때문에 정밀 타격은 불가능했지만, 그들의 풍선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공성전에 쓰이던 투석기의 사거리 한계를 극복한 획기적인 무기였고, 무엇보다 적진에 공포를 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20세기 초 전쟁에서는 열기구가 쓰였다. 1911년 이탈리아-트루키예 전쟁에서 이탈리아군은 트루키예 동맹국 리비아 수도 인근에 1.5kg의 폭탄을 열기구로 투하했고, 유사한 형태의 공중 폭격은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과 1914년 멕시코 혁명전쟁에서 이어졌다. 그들의 전투, 즉 공중폭격으로 마을과 먼 벌판에서 쌍방 군대가 포진해 치르던 군인들끼리의 전쟁 시대는 끝이 났고 전장-전선 개념도 희석되기 시작했다. 1914년 1차대전의 독일은 대형 열기구 ‘제플린 LZ25’로 벨기에 수도 앤트워프를 폭격했고, 영국 해군 항공팀은 독일 쾰른과 뒤셀도르프의 제플린 기지를 전략 폭격했다.

하지만 1937년 4월 26일 나치 독일의 스페인 북부 게르니카(Guernica) 폭격이야말로 고래의 전선-전장 개념을 전면적으로 허물어뜨린 끔찍한 사건이었다. 공화파와 내전 중이던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을 도와 나치 공군 콘도르 군단 폭격 편대는 오랜 바스크 자치지구의 거점도시이자 북부 공화파의 근거지 중 하나였던 게르니카에 약 2시간 반 동안 40톤가량의 폭탄을 투하했다. 그날은 인근 마을 농부 등 주민들이 도심으로 몰려들던 월요일 장날이었다.

사망자만 1,654명이었다는 바스크 자치정부 공식 집계는 과장돼 실제 희생자는 150~300명이라는 게 근년의 정설이지만, 민간인의 무차별적 대량 살상을 노린 나치 폭격은, 직후 피카소가 파리박람회에 출품한 대작 ‘게르니카’와 이후 2차대전 나치의 야만과 겹쳐 야만의 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