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에 전력을 쏟지 못하고 있다. 피고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형사 재판이 평일을 다 잡아먹는 데다,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아서다. 자금과 시간이 훨씬 여유 있고, 공들이던 정책 과제도 최근 잘 풀려 기세가 오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운동보다 변호사 고용에 돈을 더 많이 썼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캠프와 정치활동위원회(PAC) 등 후원 단체가 3월 한 달간 법률 관련 비용으로 400만 달러 넘게 지출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 달 사이 60억 원 가까운 정치 자금이 트럼프 전 대통령 소송에 쓰였다는 얘기다.
그동안 쓴 소송비를 다 합치면 1,000억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초부터 총 6,600만 달러(약 910억 원) 이상이 투입됐다고 WSJ는 전했다. 하루 평균 14만5,000달러(약 2억 원)꼴이다.
돈이 엉뚱하게 나가다 보니 정작 유세에 쓸 돈이 모자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의 지난달 캠페인 지출액은 370만 달러(약 51억 원)다. 같은 기간 바이든 대통령 캠프가 같은 용도로 사용한 자금(2,920만 달러)의 13% 수준이다. 변호사에게 준 돈보다도 적다.
이달부터는 굳이 돈을 아낄 필요조차 없다. 유세할 시간 자체가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주 대부분을 뉴욕시 맨해튼 법원에서 보냈다. 그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혐의를 다루는 형사 재판이 지난 15일 시작돼서다. 앞으로 6~8주간 수요일을 뺀 주중 나흘은 꼼짝없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주말이라고 기회가 늘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 오후 잡아 둔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윌밍턴 유세를 행사 30분 전에 취소했다. 뇌우가 접근하며 강풍·우박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는 2020년 대선에서 그가 이겼지만 차이가 약 7만5,000표에 불과했던 곳이다. NYT는 “재판 기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면할 어려움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 캠프 분위기는 상반된다. 모금이 순조로운 데다, 경합주 공략에 시간상 제약도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내리 사흘을 보냈을 정도다. 줄곧 열세였던 지지율도 거의 다 따라잡았다. 미국 NBC방송 여론조사(12~16일) 결과를 보면 3개월 전 5%포인트였던 격차가 2%포인트로 줄었다. 얼마 전 NYT 조사(7~11일)에서도 2월 말 5%포인트였던 간극을 1%포인트까지 좁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는 사이 자신의 재선 가도에 유리하게 작용할 성과도 얻었다.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하원 통과와 테네시주 소재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남부 첫 산별 노조 가입 결정이다. 둘 다 바이든 대통령 뜻대로 됐다는 점에서 재선 청신호로 해석 가능하다. WSJ는 그의 ‘정치적 승리’라고 표현했다. 민주당 전략가 마리아 카도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거 판이 바뀌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