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 참여한 한국 작가와 전시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국가 차원의 경연을 펼치는 국가관 전시 외에도 베니스 곳곳에서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을 알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 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7일(현지 시간)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에 마련된 한국관. 인접한 일본관, 독일관은 관람객들의 대기 행렬이 길었지만 한국관은 비교적 한산했다. 그나마 입장한 관람객들도 대개 5분을 넘기지 않고 퇴장했다. 전시장은 텅 비어 있다. 이유가 있다.
올해 한국관의 주인공은 냄새, 빛, 온도, 소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시각예술의 재료로 끌어오는 작업을 하는 구정아(57) 작가다. 'odor(냄새)'라는 단어가 포함된 전시명 '오도라마 시티'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역사와 초상을 냄새로 그리는 시도를 선보였다. 이를 위해 전시팀은 지난해 '한국의 향'에 관한 대대적 설문을 진행했다. 향수 브랜드 논픽션과 협업해 '목욕탕' '장독대' 등 16개의 냄새 경험을 조성하는 향을 전시장 곳곳에 설치하고 상업 향수인 '오도라마 시티'를 만들었다.
전시장 한편에는 높이 3m의 대형 브론즈 조각인 '우스'가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스는 구 작가가 1990년대부터 창안해 확장해온 개념으로 하나의 단어나 형태소, 물질이나 마음의 상태, 물질과 비물질의 영역을 뛰어넘어 원하는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만능 존재다. 우스의 코에서는 2분마다 한 번씩 '오도라마 시티' 향이 물과 함께 분사된다. 이설희(37) 공동 감독은 "외관이 유리인 한국관 건물은 큐레이터로서 도전적인 공간이었는데, 특별한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올해로 60회를 맞았다. 백남준 작가의 제안으로 1995년 한국관을 처음으로 설치한 이후 30주년째라는 의미도 있다. 올해 한국관은 중세 수도원으로 사용됐던 몰타 기사단 수도원에 차려졌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아르코미술관이 기획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가 이곳에서 열린다.
수도원의 작은방 하나하나에 한국관을 거쳐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건물 한가운데 중정과 이를 에워싼 회랑, 과거 마구간으로 사용된 공간, 프레스코실 등 중세 수도원의 면모를 갖춘 이색적인 공간에 36명 작가(팀)의 작품 82점이 유기적으로 펼쳐져 있다. 곽훈, 최정화, 김수자, 정연두, 서도호, 김홍석 등 작가들의 과거 비엔날레 참여 당시 작품뿐 아니라 최근작까지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이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분열됐던 역사들을 다시 연결시켜 하나의 큰 의미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라며 "30년의 흐름과 역사를 정리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비엔날레 기간 베니스시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미술 플랫폼이 된다. 비엔날레 공식 본전시가 열리는 카스텔로 공원과 옛 조선소 건물인 아르세날레, 그리고 나라별 국가관 전시가 중심축이다. 그 밖에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 30건 중 4건이 한국 관련 전시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유영국 작가의 해외 첫 개인전 '무한세계로의 여정'을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건물에서 연다.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을 세계에 알리려는 시도다. 회화 29점과 11점의 판화 외에도 그의 생애, 관점, 작가로서의 약력을 알 수 있는 도록과 아카이빙 자료가 함께 소개된다.
'숯의 작가' 이배는 고향 경북 청도의 전통문화 '달집태우기'를 베니스 한가운데로 옮겨온다. 정월대보름에 주민들이 풍년을 빌며 즐기는 세시풍습을 비디오 설치작 '버닝(burning)'으로 구현한다. 빌모트 파운데이션 빌딩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복도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상영된다. 영상이 끝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순백의 전시장에는 검은 화강암을 깎아 세운 높이 4.6미터의 조각 '먹' 등 한국의 여백과 멋을 엿볼 수 있는 이배의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올해 창설 30주년인 광주비엔날레의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1세대 추상미술작가 이성자(1918∼2009)의 개인전도 공식 병행전시에 포함됐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에선 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김실비, 전소정, 김아영의 영상매체가 상영된다.
갤러리현대는 매듭 페인팅 창시자인 신성희(1948~2009) 개인전을 마련했고 영국 런던의 마이클 버너 갤러리와 협업해 한국 설치미술 선구자 이승택과 제임스 리 바이어스의 2인전을 여는 등 한국 작가를 알리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