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현지시간) 앞으로 한국 환율과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로 이란·이스라엘 간 중동 충돌 사태를 꼽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총회 참석차 방미 중인 이 총재는 이날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정부의 개입과 미국 통화 정책에 시장이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한미일 재무장관의 공감 이후 안정세에 들어갔던 (원·달러) 환율이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반격에 흔들렸다가 확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며 다시 안정됐다”고 현재 환율 관련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 통화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처럼 석유 소비가 많은 나라는 중동 사태 향방이 가장 결정적인 불확실성”이라며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확전을 피한다면 유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지 않는다면 환율도 다시 안정 쪽으로 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던 2022년 당시보다는 지금이 그나마 원화 가치 면에서 형편이 낫다는 게 이 총재의 분석이다. 그는 “미국이 2022년 중반 0.75%포인트씩 네 번이나 연달아 금리를 올리던 때는 금리가 계속 대폭 오르고 (한미 간) 이자율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원화가 더 절하된 측면이 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는 “기대 횟수가 줄었을 뿐 언젠가 미국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2022년보다는 미 통화 정책이 상대적으로 우리 환율에 영향을 덜 준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물가 예측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중동 사태를 지목했다. “지금 예상 중인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전년비) 2.3%인데, 가장 큰 변수가 유가”라며 “중동 사태가 요동쳐 유가가 예상보다 더 오르면 물가가 쉽게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 인하 여부의 핵심 기준도 물가다. 그는 “미국 통화 영향, 환율 등도 고려해야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소비자 물가가 우리가 예상하는 속도로 내려올지를 금융통화위원회가 우선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이 총재는 주장했다. 그는 “국내 수요만 보면 과잉일 수 있어도 수출을 함께 따질 경우 왜 과잉이냐는 반박이 가능하다”며 “중국의 저가 상품을 수입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경제 이론뿐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한 만큼, 협상을 통해 많은 부분이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데 미국 경제만 유독 잘나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며 고용 유지에 중점을 둔 유럽과 달리 미국은 소비자에게 직접 보조금을 주며 고용 유연성을 담보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기술이 올 때 고용 시장이 빨리 반응할 수 있고, 이게 생산성의 원천 아니냐는 견해가 있다”고 이 총재가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