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입양 살해범 구속 기소.. 엄벌만큼이나 중요한 '예방책' 없을까?

입력
2024.04.20 09:00

지난 2월, A씨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습니다. 이 고양이에게 좋은 가족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입양 플랫폼에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A씨는 이 사람과 대화를 진행하던 중,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어 입양을 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A씨는 소셜 미디어에서 한 글을 발견했습니다.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입양간 뒤 하루 만에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강아지를 입양해 간 사람의 연락처를 보고 A씨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전화번호는 불과 며칠 전, A씨에게 입양 문의를 했던 남성의 연락처와 일치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피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이 남성에게 입양을 보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겁니다. 피해자들이 남성에게 동물의 행방을 물으면 이 남성은 ‘잃어버렸다’, ‘행방불명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패턴에 피해자들은 점점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습니다. 남성은 동물을 반복적으로 입양한 뒤 살해를 일삼은 '입양 살해범'이었던 겁니다.

유기동물을 입양한 뒤 살해하는 ‘입양 살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최근 적발된 입양 살해범은 구속돼 재판을 앞두게 됐습니다. 입양 살해가 수년째 반복되는 범죄지만 근본적인 방지 대책은 현재까지 없는 실정입니다.

지난 12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20대 남성 B씨를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경기 파주시 일대에서 2023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개 5마리, 고양이 6마리를 입양한 뒤 바닥에 던지거나 목을 조르는 방식으로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B씨를 검거한 경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입양 살해 혐의가 명확한 사례는 11건이지만, 피해자들과 동물보호단체들은 추가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 윤성모 활동가는 동그람이에 “11마리는 경찰에서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사례들만 모은 것”이라며 “정황상 훨씬 더 많은 피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B씨의 입양 과정은 매우 치밀했습니다. 윤 활동가는 “입양과정에서 B씨는 여러 고양이 중 한 마리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가 입양하겠다고 한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B씨는 보호자에게 “얘가 딱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화번호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입양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심지어 최근 동물학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이유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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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B씨의 집에서 생존한 채 발견된 동물들은 긴급격리 조치돼 카라의 협력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생명 경시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B씨는 곧 재판을 통해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될 예정입니다. 입양 살해에 대한 법원 판결은 상대적으로 강한 편입니다. 지난해 3월, 전주지법은 ‘푸들 입양 살해범’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이 범인은 지난 2020년 10월부터 약 1년 동안 전북 군산시의 자택에서 푸들 품종견 21마리만 골라 입양을 받은 뒤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혔습니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경남 창원시에서 고양이 3마리를 분양받은 뒤 2마리의 목을 졸라 죽인 입양 살해범에게 징역 8개월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입양 살해범에게 강한 처벌이 내려지는 이유는 ‘계획범죄’의 성격이 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두 사건의 재판부 모두 범인이 동물을 살해할 목적으로 입양했다는 ‘계획성’을 판결문에 명시할 정도로 중요한 판단 요소로 삼았습니다. 즉, 갑자기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서 동물을 살해한 만큼 그 잔혹성이 더욱 심각하다는 의미입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처벌을 받게 되면 입양 살해 문제는 해결되는 걸까요? ‘그렇다’라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입양 살해 사건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군산 푸들 입양 살해 사건 이후로 입양 살해 사건은 수차례 발생했습니다. 강한 처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손쉽게 입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1차적인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보통 유기동물을 입양하려면 지방자치단체 혹은 민간이 세운 보호소를 찾아갑니다. 또는 입양 플랫폼에 개인 구조자가 올린 동물을 입양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입양자에 대한 검증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사실입니다. 신주운 카라 정책팀장은 “지자체 보호소에서도 입양 과정에서 서류 한 장만 작성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동물을 제대로 돌볼 사람인지 가려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민간 보호소나 일부 개인 구조자들은 나름의 기준을 세워 입양자를 선정하지만, 그마저도 민간 영역이라 개인의 신상정보를 취득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는 입양자가 계획적으로 10마리, 20마리를 입양해 살해한다 하더라도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입양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실정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좀 더 동물 사육 실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동물을 어디에서 데려와서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입양 살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인 개조차도 이게 구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개인 한 사람이 10~20마리를 입양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그게 동물을 위해 올바른 것인지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카라는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예방책을 법제화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 팀장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유기동물 정보 제공 플랫폼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플랫폼 측과 정책적인 고민을 공유한 뒤 법제화 방안을 국회에 제안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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