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외교와 국제정세에도 눈을 돌리자

입력
2024.04.22 00:00
26면
선거 와중 전개된 동북아 정세의 급변
김정은, '좌러-우중'으로 제재 무력화
안보에선 정쟁 멈추고 공동 대응해야

뜨거웠던 국내 정치의 시즌이 일단 벚꽃과 함께 막을 내렸다. 정권심판론과 거야심판론이 충돌했다. 소모적인 비난과 갈등이 선거 운동의 주류를 이뤘다. 선거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당선사례를 내건 당선자와 4년 후를 기약한다는 낙선자 모두 아수라장의 선거였다.

야당 후보자의 이상한 부동산 거래, 기이한 역사관과 부패 혐의에도 불구하고 대파, 수석의 막말, 호주대사 임명 등으로 정부 여당은 유권자들의 호된 심판을 받았다. 야당 대표의 '셰셰' 발언으로 외교와 국제정치가 잠시 이슈가 됐지만 오만과 불통의 이미지가 투표 기준이 됐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국내 정치 일정으로 대한민국의 국제관계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도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잡음으로 상대국에 양해를 구하고 취소했다. 외교 안테나의 촘촘한 작동도 중지됐다.

하지만 총선 시계와는 별도로 국제관계는 선거 기간에도 숨 가쁘게 돌아갔다. 러시아는 북한을 제재해왔던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을 거부했다. 대외 불법 거래를 감시당했던 북한의 족쇄가 풀린 것이다. 북러의 군사 및 정보협력 밀월은 분야를 넓히고 있다. 러시아 정보당국 수장인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3월 평양을 방문해 리창대 국가보위상과 회담을 했다. 중국의 권력 서열 3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상무위원장이 12일 평양에서 김정은과 세 번 포옹하고 '셰셰' 하며 올해 가을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을 협의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백악관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미일동맹의 격상에 합의했다. 기시다 총리와 김정은의 정상회담 추진도 양해가 이뤄졌다. 미·일·필리핀은 3자 협의체를 구성해 기존의 오커스(AUKUS)와 쿼드(Quad)를 포함해 '격자구조'(latticework) 대중국 견제망을 형성했다. 마지막으로 중동에서 날아오는 제5차 중동전쟁의 전운도 예사롭지 않다.

주변 4강의 합종연횡(合從連衡)과 블록화 실상을 간략하게 요약했지만, 함의는 복잡하고 향후 파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러시아의 대북제재 동참 거부는 북핵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 정권의 목줄을 조여 왔던 유엔 대북제재의 나사가 풀리고 있다. 정보기관 수장의 방북은 양측의 군사협력 강화 이외에 푸틴 대통령 5월 방북의 사전 답사다. 양국이 군사협력을 한 단계 강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군사정찰위성과 전투기 개량 기술 등도 협의했다.

다음은 북중관계가 지난 5년간의 소강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김정은과 자오러지 면담은 올해 하반기 김정은과 시진핑의 정상회담을 겨냥하고 있다. 북러의 협력 강화에 따른 중국의 균형추 회복 전략이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침체기를 벗어나 북중 동맹의 회복이 시작됐다. 평양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등에 업고 서울을 배제하면서 도쿄, 워싱턴과의 직접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중러의 삼각 협력이 가시화되는 형국이다. 김정은은 좌(左) 러시아, 우(右) 중국 외교전략으로 핵무장과 대북제재 무력화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야당은 미일과 거리를 두고, 중러와 근접하고, 북한과 협력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향후 22대 국회에서 여·야 간에 뜨거운 감자가 되는 주제다. 하지만 북중러의 관계가 동북아 무장세력으로 비화하는 시점에 과연 한국의 국익 기준은 무엇일지 고심이 깊어갈 수밖에 없다.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되는 정글의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애매한 독자 노선은 자칫 길 잃은 외로운 양이 될 수 있다. 여·야가 '정쟁(政爭)은 국경에서 멈춘다'는 외교가의 격언은 반드시 새겼으면 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