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홍 PD가 쏘아올린 공…예능 작가들의 현주소②

입력
2024.04.21 09:23
남규홍 PD가 주장한 '자막 작가', 실재하나
표준집필계약서 아닌 드라마 계약서 언급된 이유
방송작가협회가 밝힌 방향성

남규홍 PD가 쏘아 올린 공이다. 여전히 방송작가들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노동자이지만 프리랜서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즐비한 시대다. 부당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작가의 영역을 침범한 '나는 솔로' 사태는 더욱 크게 느껴질 터다. 현재 방송작가들의 여론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솔로'는 촌장엔터테인먼트 소속 피디들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최근 남규홍 PD와 '나는 솔로' 작가들이 계약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작가들은 남규홍 PD가 표준 계약서 작성을 거부했다고 주장했고 남규홍 PD는 "계약서를 수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남규홍 PD는 PD들이 창작자 원작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재방송료를 수령한 적 없다면서 "PD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업계 현실과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새로운 저작권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촌장엔터테인먼트는 '나는 솔로' 제작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입장을 펼쳤다.

방송작가유니온에 따르면 남규홍 PD의 사태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제13조(불공정행위의 금지) 1항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예술인에게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거나 계약 조건과 다른 활동을 강요하는 행위'와 2항 '예술인에게 적정한 수익배분을 거부, 지연,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남규홍 PD의 입장은 PD가 작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스태프 스크롤에 이름을 올린 것이며 이 과정에서 그의 친딸이 '자막 작가'로 참여했기 때문에 스크롤 명단에 작가로 등재됐다는 주장이다.

방송작가협회가 밝힌 입장은?

본지가 접촉한 작가들은 모두 분통을 터트리면서 남규홍 PD에 대한 날선 비난을 던졌다. 이들은 입을 모아 작가의 영역과 위신이 와해됐다면서 불쾌감을 토로했다. 남규홍 PD가 활용했다는 용역 계약서는 유례없는 행태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과거 PD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가 빈번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위치와 권위가 존중받는 시대가 오면서 '부당 해고', 또는 '일방적 계약해지'의 경우는 많이 사라졌다. 작가들에 대한 안전망이 두터워지면서 과거보다는 메인 작가 등의 입김이 강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인 작가의 능력이 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방송작가 협회 관계자는 본지에 "통상적으로 자막 작업만 하는 스태프를 작가라고 하지 않는다. 자막은 작가 또는 PD들이 제작 과정에서 잠작 업무를 병행하기도 한다. 남규홍 PD의 자녀처럼 자막만 하는 경우 작가라고 하는 사례는 한 번도 없다. 그쪽에서는 자막의 역할이 크다고 보지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남규홍 PD가 언급한 '드라마 계약서'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작가들은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한 가지 양식의 표준집필계약서로 계약을 한다. 각 장르 상에서 일부 수정할 수 있지만 개별의 양식은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유니온과 달리 작가협회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취했다. 아직까지 상황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추후 행동이나 방향성을 밝히기 어렵다고 밝힌 이 관계자는 "그간 작가와 PD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 맡은 롤을 했다. 이번 일로 인해 작가들이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현재 협회는 피해 작가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제작 환경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는데 그런 부분에서 논의를 마쳤다. 향후 결정되는 부분에서 (피해 작가들과) 다시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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