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때아닌 ‘스파이’ 논란이 일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필리핀과 중국 간 물리적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갈등의 최전선, 그것도 미군 기지 인근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 수천 명이 몰려온 까닭이다. 군 당국은 이들이 감시·염탐 활동을 위해 학생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18일 마닐라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최근 중국 학생 4,600여 명이 루손섬 카가얀주(州) 투게가라오시(市) 한 사립대에 등록한 상황을 조사하기로 했다. 프란셀 마가레스 파디야 필리핀군 대변인은 “중국 학생 증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로 했다”며 “경찰, 이민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대학 내 외국 학생 입학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장소와 시점 모두 공교롭다. 루손섬은 대만에서 400㎞ 떨어진 필리핀 최북단에 위치했다. 지난해 2월 필리핀·미국 방위협력확대협정(EDCA) 조약에 따라 미군이 배치된 군사 기지 4곳 중 3곳이 이 섬에 있으며, 이 중 2곳(카밀로 오아시스 해군기지, 랄로 국제공항)이 카가얀주에 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커지는 시점에,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 교두보 한복판에 중국 청년이 대거 몰려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필리핀 정부가 판단한 셈이다.
또 다른 의심 정황도 잇따른다. 현지 매체 폴리티코는 “중국 학생들이 머무는 곳은 카가얀주 군사 기지 인근”이라고 전했다. 카가얀 출신 국방분석가 체스터 카발자 필리핀대 교수는 일간 인콰이어러에 “학생들이 학위 취득을 위해 200만 페소(약 4,800만 원)를 지불했지만, 일부는 수업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들이 ‘더 큰 목적’을 갖고 필리핀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일부 하원의원은 17일 국회 차원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필리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중국 유학생에게 더 엄격한 비자 발급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지 주정부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발한다. 친중파로 여겨지는 마누엘 맘바 카가얀 주지사는 “중국 학생들은 학생 비자와 필리핀 외교부가 발급한 적법한 서류를 갖췄다”며 “중국과 카가얀 고등 교육기관이 체결한 파트너십을 통해 공부 기회를 얻은 이들”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또 “학생들을 중국 영토 분쟁과 연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분쟁이 격화하면서 필리핀에선 군사 관련 시설이나 조직에 중국인이 근무하는 데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남중국해를 순찰하는 필리핀 해양경비대 산하 보조대에 중국인 36명이 2, 3년간 보조요원으로 소속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인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