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의 원제는 '날들의 아이들(LOS HIJOS DE LOS DIAS)'이다. 저자는 첫머리에 과테말라의 마야 공동체에서 들은 이 낭만적인 창세기의 구절에서 책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2015년 타계하기 3년 전, 72세에 발표한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굴곡진 역사에 평생 천착한 그가 세계로 눈을 돌려 인류의 역사를 재해석한 역사서다. 폐암 투병 중 혼신을 다해 완성한 책은 그의 사망 9년 만에 한국어로 출간됐다.
책은 한 해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365건의 역사를 기록한 일력(日曆) 방식으로 쓰였다. 1년 365일 날짜별로 그날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해설과 각주를 붙였다. 당연지사 역사 일력의 시작점은 '1월 1일 오늘'.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그러나 마야인, 유대인, 아랍인, 중국인을 비롯해 이 세상의 수많은 민족에겐 그렇지 않다"는 문장으로 출발해 로마제국이 만든 바티칸이 공인한 오늘날 달력의 의미를 짚는다.
12월 31일의 역사 '말의 여정'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208년 이날 로마의 시인이자 의사인 세레누스 삼모니쿠스는 '비사'라는 책에 당시 유행하던 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자신만의 주문을 밝히는데, 바로 '아브라카다브라'다. 갈레아노는 고대 히브리어 주문의 의미를 마지막 문장으로 새겨 놓았다. "너의 불꽃을 세상 끝까지 퍼트려라!" 오랜 시간 라틴아메리카의 양심을 대변한 저자가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맺기로 이보다 시적이고 지적인 문장이 있을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매일의 역사가 모여 연결되고 뒤집어지기를 반복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최초의 동성 결혼식'이 있던 1901년 6월 9일을 들여다보자. 주인공 엘리사와 마르셀라는 결혼식을 올리려 목소리를 바꾸고 변장을 했지만 여러 번 체포되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는 멈추지 않았다. 한 세기 뒤인 2010년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저자는 주류가 쓴 세계사와는 다른, 동서고금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집중했다. '빈곤과정'을 쓴 조문영 연세대 교수가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 생명으로 살기를 거부한 존재들을 역사에 전면에 등장시키"며,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역사적 질문"이다. 책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