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홍 PD가 쏘아올린 공이다. 여전히 방송작가들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노동자이지만 프리랜서의 위치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즐비한 시대다. 여전히 부당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작가의 영역을 침범한 '나는 솔로' 사태는 더욱 크게 느껴질 터다. 현재 방송작가들의 여론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솔로'는 촌장엔터테인먼트 소속 피디들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최근 남규홍 PD와 '나는 솔로' 작가들이 계약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작가들은 남규홍 PD가 표준 계약서 작성을 거부했다고 주장했고 남규홍 PD는 "계약서를 수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남규홍 PD는 PD들이 창작자 원작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재방송료를 수령한 적 없다면서 "PD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업계 현실과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새로운 저작권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촌장엔터테인먼트는 '나는 솔로' 제작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입장을 펼쳤다.
남규홍 PD의 입장은 PD가 작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스태프 스크롤에 이름을 올린 것이며 이 과정에서 그의 친딸이 '자막 작가'로 참여했기 때문에 스크롤 명단에 작가로 등재됐다는 주장이다.
방송 작가가 문제의 '재방송료'를 받기 위해선 방송작가 협회 기준을 맞춰야 한다. 예능의 경우 프로그램 방영 60개월, 즉 5년이 기준점이며 이를 충족시켜야 재방송료가 나온다. 그렇다면 왜 PD는 재방송료를 받지 못할까. 본지가 직접 만난 현직 방송작가 A씨는 "방송사 PD들은 프로그램이 편성이 되지 않거나 폐지가 되어도 월급이 계속 나온다. 외주 PD는 보통 제작 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월급이 나온다. 그러나 작가들은 방송이 시작해야 월급을 받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나는 솔로'에는 방송작가협회에 가입된 작가들이 없다. 재방송료를 받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남규홍 PD와 그의 딸이 작가로 등록됐다는 것은 그들에게 재방송료가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나는 솔로' 메인 작가는 타 예능들보다 현저히 낮은 연차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피어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재방송료를 언급할 정도로 금액은 결코 적지 않단다. 본지와 접촉한 작가들은 방송작가 협회가 작가와 PD의 경계를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규홍 PD가 주장한 '자막'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다. 프로그램의 자막을 다는 업무는 PD 또는 작가가 병행하는 작업 중 하나다. 통상적으로 PD가 쓰는 경우가 많지만 자막을 쓴다고 해서 작가로 인정받을 수 없다. 자막 작업만 하는 프리랜서 작가들도 있지만 이들이 구성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로 규정할 수 없다.
남규홍 PD가 직접 밝힌 것처럼 PD가 구성에 참여했다면 작가 역시 연출과 시사, 편집 구성안까지 함께 작업하는 경우 PD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A씨는 "왜 서로의 선을 넘느냐며 작가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짚었다.
협회가 있지만 회원이 되는 기준은 까다롭다. 방송작가 직업 특성상 기획과 촬영, 방송까지 수개월이 걸리지만 비교적 방영 기간이 짧기 때문에 협회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OTT는 인정되지 않는다. 교양의 경우 작가가 메인으로 참여한 게 1년 이상 되어야 신청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 일한 지 10년이 넘었어도 협회에 등록하지 못한 이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협회를 제외하고 프리랜서 작가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떤 안전망이 있을까. 가장 먼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하 방송작가유니온)라는 단체를 꼽을 수 있다. 협회에 가입하지 못한 작가들은 유니온으로 자문을 구하곤 한다. 유니온은 남규홍 PD와의 갈등에서 가장 크게 액션을 취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유니온은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나는 솔로'의 제작사인 촌장엔터테인먼트(대표 남규홍)를 서면계약위반과 방송작가에 대한 권리침해로 신고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남규홍 대표의 사태가 ‘'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제13조(불공정행위의 금지) 1항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예술인에게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거나 계약 조건과 다른 활동을 강요하는 행위'과 2항 '예술인에게 적정한 수익배분을 거부ㆍ지연ㆍ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①촌장엔터를 상대로한 문체부의 조사 ②결과에 합당한 과태료 처분 ③방송작가들이 침해받은 권리 구제 위한 시정 명령이다.
실제로 일부 작가들은 제작사의 압박에 의해 계약서를 미체결한 상태로 작업을 했다가 돈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계약서 미작성 상태에서 방송이 되지 않을 때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은 없다. 특히 중소 제작사들은 프로그램 방영 후 임금을 지불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만큼 작가들의 환경은 열악하다. 본지와 만난 작가 역시 3개월 가량의 작업을 했음에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기획하다 엎어지는 프로그램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방송 작가들은 항상 불안정한 고용 시장에 놓인 셈이다. 기획 기간의 업무는 임금의 50~75%로 집계됐다. 이번 사태에서 작가들이 가장 불쾌한 지점은 남규홍 PD의 직업 비하다. A씨는 "남규홍 PD가 '작가들이 하는 일도 없고 PD가 다 한다'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이 기분이 나빴다. 프로그램을 자기가 구성했다고 하고 자기가 작가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게 당황스럽다"라고 솔직하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