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끝내기 안타 타석 때요? 자신 있었죠.”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프로야구 LG의 구본혁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최근 물오른 타격감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달 4일 NC전 연장 11회말 1사 2·3루에서 프로 데뷔 후 첫 끝내기 안타로 팀의 8-7 역전승을 이끌었다. 당시 10회 대수비로 교체 출장했던 구본혁은 “예전이라면 ‘대타가 누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올 시즌에는 스스로도 타격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어서 ‘내가 타석을 소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며 “(타격이 약하다는)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 있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NC전 활약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이틀 뒤인 6일 KT전에서 9회말 끝내기 만루포를 터트렸고, 12일 두산전과 16일 롯데전에서도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올 시즌 타석에 선 11경기 중 절반 정도가 교체투입임에도 16일 현재 무려 11타점을 올리며 ‘슈퍼 조커’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타자 중 한 명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2019년 입단 후부터 지난해까지 ‘수비 전문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1루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다는 뚜렷한 장점이 있었지만, 2021년까지 매년 1할대 타율을 기록할 만큼 타격 성적이 저조했다. 이 때문에 주로 경기 후반 대수비로 출장했던 구본혁은 “솔직히 신인 때는 아마추어 시절 대로만 해도 잘 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훈련도 하던 대로만 했다”며 “무척 후회되는 날들”이라고 과거를 돌아봤다.
‘수비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지며 악순환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타격연습을 하려 해도 혹시 누군가가 ‘대수비 선수가 왜 방망이를 들고 있지’라고 생각할까 봐 숨어서 훈련을 했다”며 “남들 앞에서 운동 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전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군 입대였다. 구본혁은 “2022년 5월 상무에 입대했는데, 4월까지 1군 콜업이 안 됐다”며 “타격이 안 되면 경기에 나갈 수 없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자극을 받은 그는 군 복무 중 시간이 날 때마다 타격 훈련에 매진했다. 구본혁은 “상무에서 최원준(KIA) 천성호(KT) 등 좋은 타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다”며 “나는 상체로만 타격을 했는데 그들은 하체를 쓰고 있었고, 배트의 면을 살려 치더라. 쉬는 날도 동기들과 스윙하면서 타격에 눈을 뜨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참가한 스프링캠프도 타격 기술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구본혁은 “(배트의) 면만 살리려다 보니 배트가 밑으로 자꾸 떨어졌는데, 코치님들 도움을 받아 방망이가 바로 나오도록 교정했다”며 “야간 훈련도 빼먹지 않고 하루에 300~400번 스윙을 했다”고 말했다.
2년여의 노력 끝에 구본혁은 달콤한 열매를 맛보고 있다. 그는 16일까지 타석에 선 11경기 중 9경기에서 안타를 쳤다. 결승타라는 임팩트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을 뿐 올 시즌 그의 최대 강점은 꾸준함이다. 이 덕분에 구본혁은 벤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14일 두산전과 16일 롯데전에선 잠시 숨을 골랐던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오지환을 대신해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넓어진 운신의 폭만큼 여유도 생겼다. NC전 끝내기 안타를 친 후 “멋있게 못 쳐 아쉽다”고 말하거나 가장 선호하는 수비위치로 유격수를 꼽으며 “(오)지환이 형을 닮고 싶어서”라는 이유 뒤에 “제일 멋있는 자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일 정도다.
그렇다고 구본혁이 스타의식에 빠진 건 아니다. 그는 성실함과 겸손함이 결여되면 롱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구본혁은 “(박)해민이 형과 (김)현수 형이 일찍 경기장에 나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그 루틴을 따라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진촬영을 위해 과거 이정후(샌프란시스코)가 취했던 포즈를 요청하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손사래를 치며 "평범한 포즈로 촬영하고 싶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올 시즌 목표도 “당연히 LG의 2연패”라며 개인이 아닌 팀에 방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재차 개인의 목표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수비 위치와 타순에 상관없이 늘 제 몫을 다 하는 것”이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