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을 몇 번이나 봤다고 하겠지만 이건 보지 못했을 겁니다."
다음 달 8~19일 LG아트센터서울에서 한국 초연하는 무용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출 겸 안무가인 영국 스타 안무가 매슈 본(54)은 '고전 변주의 귀재'다. '백조의 호수'엔 가녀린 여성 백조 대신 근육질 남성 백조를 세웠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현대의 뱀파이어 이야기로 바꾼 무대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본은 2019년 런던에서 초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세대에 관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며 "그 어떤 버전보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유혈이 낭자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엔 중세 이탈리아 베로나 몬태규 가문의 로미오와 캐퓰릿가의 줄리엣은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까운 미래의 청소년 교정 시설인 '베로나 인스티튜트'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고,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위험한 사랑을 이어 나간다. 약물, 트라우마, 우울증, 학대, 성 정체성 등 현대 젊은 세대의 민감한 문제들도 거침없이 묘사된다. 본은 "영화나 TV드라마, 연극에서 흔히 다루는 이런 주제를 무용으로 표현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며 "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비극적 현실을 직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정적 사랑은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텔레그래프)이라고 언급될 만큼 강렬한 파드되(2인무)로 표현된다. 대개 발레와 무용에서 키스 장면을 절제된 마임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 공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치 한 몸이 된 듯 돌고 구르면서 춤을 춘다. 본은 "사랑에 처음 빠졌을 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 감정과 흥분을 포착했다"며 "관객이 어린 시절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젊은 무용수·창작자와 협업한 것도 이 공연의 특징. 2018년 영국에서 16~19세 무용수들을 선발하는 대규모 오디션을 열었고, 20대 여성 안무가 아리엘 스미스와 함께 작업했다. 본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종종 너무 나이 든 배우들로 캐스팅된다"며 "젊은 사람들과 일하며 그들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듣고 싶었고, 젊은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오늘날 세계에 대한 신선한 접근법과 에너지, 통찰력을 원했다"고 말했다.
본은 1986년 자신의 무용단 설립 후 발표한 13편의 장편이 모두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내한 공연도 8차례 이뤄져 1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의 창작 철학은 확실하다.
"뻔한 버전의 작품은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작품은 조금이라도 도전받고 놀라움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에게도 지루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