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음식 먹고 난 뒤에 배탈 나서 하루 만에 1㎏이 빠졌다니까요.”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음식점 업주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 전 손님으로 왔다는 한 남성이 “일행이 밥을 먹고 구토·설사·고열 등에 시달렸다.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물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항의 전화에 당황한 업주는 수화기를 붙잡고 연신 “죄송하다”며 쩔쩔맸다. 이 남성은 “더 이상 이 일로 통화하고 싶지 않으니 바로 조처를 해 달라”며 “계좌번호 보낼 테니 병원비를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업주는 경기 불황에다 지자체로부터 혹시 영업 정지라도 당할까 두려운 마음에 부랴부랴 200만 원을 입금했다. 이게 A(39)씨의 사기 행각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17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A씨는 이미 전국 자영업자 사이에선 일명 ‘장염맨’이란 별명으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었다. 그는 2022년에도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해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두 달 만에 또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휴대전화로 ‘지역 맛집’을 검색한 뒤 하루에 10~20곳의 음식점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다.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17개 시·도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왔는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 “며칠 동안 죽만 먹었다”며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업주들이 합의를 꺼리거나 거부하면 “영업 정지당하고 싶냐” “법적 책임을 각오하라”고 윽박질렀다. A씨는 범행이 발각될 것에 대비해 29차례나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기도 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그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10개월간 전화한 음식점만 3,000곳에 달한다. 이 중 418곳 업주 등이 약 10만~200만 원씩 총 9,000만 원을 A씨에게 보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자영업자 등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슷한 사례가 공유됐고, 첩보를 입수한 전북경찰청 형사기동대가 피해 업주들의 진술과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 계좌 내용 등을 분석해 지난 12일 부산시 한 모텔에서 A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틀 뒤 상습사기 혐의로 A씨를 구속해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A씨는 경찰에 “출소 후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 사기를 당해 빚을 갚으려고 범행했다”며 “음식점에서 받은 합의금은 인터넷 도박 자금과 생활비로 썼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비슷한 범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사한 날짜와 시간, 영수증 등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하고, 음식점 폐쇄회로(CC)TV 등 자료를 통해 음식을 실제 먹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