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책이 있었다. 그 자리에 성경이 있었다면 성경을, 경전이 있었다면 경전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란 틀에 박힌 표현이 가장 적확했던 시기. 손웅정(62)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지금도 ‘삶의 고비’로 떠올리는 시간이다.
손흥민(32ㆍ토트넘 홋스퍼) 선수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첫 시즌(2015~2016년) 때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당시 감독은 손 선수를 기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28경기 중 손 선수가 선발로 나온 건 13경기뿐. 총 출전 시간도 1,104분에 불과했다. 경기당 평균 39분 남짓 뛴 셈이다. 직전 시즌 분데스리가에선 30경기 중 2경기를 빼곤 모두 선발 출전했다. EPL로 옮긴 지 1년이 채 안 돼 이적을 고민한 이유다.
누구보다 괴로운 건 아버지 손 감독이었다. 선수가 경기를 뛰지 못할 때의 심정, 그로 인한 파장을 선수 출신인 자신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배우는 무대 위에 있어야 행복하듯, 축구 선수도 운동장에 있어야 해요. 경기를 뛰어야 성장하고 발전하니까. 감독이 경기에 투입하지 않으니 이적하겠다고까지 했는데 보내주지도 않았죠.”
그런 상황이 수개월 흘렀다. 그 고통의 시간에 손 감독과 함께한 건 책이었다. “한번은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책을 집어 들어서 네 시간을 그대로 앉아서 읽었어요. 나중에 일어서려는데 몸이 굳어서 목을 숙일 수가 없더라고요.”
술을 즐기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그에게 책은 친구이자, 스승이자, 바이블이다. “힘들 때마다 책을 들었어요.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극복할 방법이 책이더라고요.” 그가 “내게 책은 유희의 도구가 아닌 절실한 생존의 도구”라고 표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책은 그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이기도 하다. 그는 옷도 계절별로 상의 두 벌씩, 신발도 영국에 두 켤레, 한국에 두 켤레만 두고 산다. 그의 삶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표현처럼 “담박하다”.
애초에 ‘맨발’이었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의 곤궁한 초가집 셋째 아들에게 운동화는 로망일 뿐. 금세 땀이 차 미끄러지기 십상인 고무신 대신 그가 신을 수 있는 축구화는 맨발이었다. 그래도 운동화가 부럽진 않았다. 갈망의 대상은 책이었다. 축구부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도 공중화장실에 붙어있는 명언을 기억하려고 칸마다 열어서 보곤 적었다.
갈증을 해소한 건 서른이 다 되어서다. 그는 프로 4년 차에 예상치 못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조기 은퇴했다. 막노동에 일용직 헬스 트레이너로 ‘투잡’ ‘스리잡’을 할 때도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책을 읽었다. 하루를 청소와 운동, 독서로 여는 건 그의 오랜 루틴이다.
그는 책을 지독하게 읽는다. 좋은 책은 삼독(三讀)이 기본. 일독을 할 땐 와닿는 구절을 검정 볼펜으로 밑줄을 쳐 가면서, 재독을 할 땐 파랑 볼펜으로, 삼독할 땐 빨강 볼펜으로 메모를 한다. 그런 뒤 책의 주요 대목에 자신의 생각까지 덧붙여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런 두툼한 독서노트가 최근 15년 것만 일곱 권이다. 그렇게 자기 것으로 만든 책은 버린다.
책과 함께 성장해 온 그의 이야기가 이달 20일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난다)로 출간됐다. 그는 ‘손흥민의 아버지’에서 ‘손웅정’으로, 인생의 새로운 시즌을 살고 있다. 예순을 갓 넘긴 그는 “예순은 마법의 나이”라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1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에 살던 손웅정은 어땠나요.
“전기도 안 들어와서 등잔불을 켜던 시절이었죠. 형님 두 분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도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생업 전선에 내몰릴 판이었다. 친지가 “장사를 배우라”거나, 마을 이장이 “신발 공장에 가는 건 어떻겠냐”고 할 때마다 그는 속으로 오기를 키웠다. 일찌감치 그가 정한 인생의 답은 축구였다.
-축구가 왜 좋았나요.
“1년에 한 번씩 청년 형들이 동네 대항 축구 대회를 했어요. 그걸 구경하려고 마을의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보곤 했죠. 그 공 소리에 그렇게 흥분될 수 없었어요. 축구공이란 걸 차보기도 전의 일이죠.”
-뻥 차는 소리 말인가요.
“맞아요. 게다가 공 하나를 놓고 서로 경합하고 뛰는 모습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게 축구와의 첫 만남인가요.
“맞아요. 꼭 축구를 해야겠다 싶었죠.”
‘첫 출전’은 교회 축구대회였다. 교회도 안 다니는 데다 축구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그를 친구들이 끌고 갔다.
-운동화가 없어서 맨발로 나가 골까지 넣었다고요.
“맞아요. 인생의 첫 골이죠.”
-어릴 때인데 아프지 않던가요.
“고무신은 땀이 차서 미끄러우니까 벗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땐 그래서 늘 맨발로 축구를 했어요. 그래서 상처가 많이 났죠. 특히 운동장에 라인 표시를 하려고 홈을 파놓은 곳들이 있거든요. 횟가루도 없을 때니까. 그런 데를 잘못 차면 살이 찢어져요. 그래서 지금도 흉터가 많아요.”
까만 발톱, 군데군데 검붉게 변한 굳은살들이 그때의 흔적이다.
-그런데 상대 팀 선수들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고요.
“980원짜리 범표 운동화. 그 시절엔 로망이었어요. 그러니까 가격도 잊히지 않아요.”
-부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부럽다기보다 내가 공을 잘 차서 (축구에) 입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죠. ‘그럼 언젠가는 저걸 못 신겠냐’ 하면서.”
-의지가 대단하네요.
“운칠기삼이에요.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식당에서 저한테 축구를 제안했던 분들과 우연히 만나는 바람에 진짜 축구를 하게 됐으니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간절한 꿈이 있으면 그런 인연이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가 뛰는 걸 본 학교 체육 교사와 축구부 코치가 그에게 축구부에 들어오라고 제안한 것이다. 단, ‘입단료’가 문제였다. 쌀 다섯 말. 축구부에서 합숙하며 먹을 밥값이었다. 그러잖아도 없는 살림에 아버지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랬던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들른 장터 식당 옆자리에 체육 교사와 코치가 앉아 자신들이 탐냈던 학생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 학생은 바로 손 감독이었다.
-인생을 바꾼 순간이네요.
“맞아요. 그때부터 축구를 하게 됐으니까.”
-그런데 평소 ‘나는 내 축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다’고 하는 이유는 뭔가요.
“초중고교 시절 나는 오로지 축구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축구를 잘할까’ 이 생각만 하고 살았죠. (축구부) 애들이 다 쉬는 주말에도 연습했고, 다른 애들이 하루에 한 번 연습하면 나는 세 번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결국 ‘삼류’였어요. 내가 생각하는 목표만큼의 선수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것이 나의 수준이었어요.”
1984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결승전은 아직도 ‘축구선수 손웅정’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경기다. 그가 속한 명지대는 전반까지 상무에 1 대 2로 지다가, 후반 43분 그의 역전골로 우승한다. 심지어 그는 부상을 입어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채였다. 실업팀 최강이었던 상무가 손 감독을 ‘스카우트’한 계기다. 제대 후에도 현대 호랑이에서 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일화 천마 입단 2년 만에 은퇴해야 했다. 37경기 출장 7골(오른발 2골, 왼발 3골, 헤딩 2골). 그의 K리그 4년의 기록이다.
-흥윤(SON축구아카데미 수석코치)ㆍ흥민, 두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감독님의 축구부터 돌아본 건 왜인가요.
“결과를 바꾸려면 과정부터 바꿔야 했으니까요. 나처럼 되게 하지 않으려면 다르게 해야 했죠. 내가 한 걸 돌아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공부도 시작했죠. 세계 축구의 흐름을 알아야 하니까. 비디오테이프(VHS)에다 월드컵 경기,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다 녹화해 놓고 봤죠.”
손 감독만의 훈련법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리프팅 같은 기본기에만 7년을 쏟아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게 있나요.
“내가 게으름을 피웠다면 후회스러웠을 수도, 창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으니 후회되진 않아요.”
-책은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중·고교 시절에도 시합 다닐 때 공중화장실을 들르면, 문에 붙은 명언을 보려고 칸마다 열어 보곤 했어요. 그러곤 적어뒀죠. 그때는 시간도 없었지만, 책을 살 돈도 없을 때니까.”
-그럼 그렇게 보고 싶던 책을 보게 된 건 언제인가요.
“은퇴하고 나서죠. 막노동판에도 다니고 하루에 두세 가지 일을 할 때도 짬짬이 책을 봤어요.”
-책에 갈증이 있었군요.
“맞아요. 지금도 그래요. 주기적으로 서점에 가서 열두어 권씩 사거든요. 바로 책을 읽지 못할 때는 ‘내가 오늘 가져온 저 책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막 궁금하고 호기심이 일어요.”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뭔가요.
“일단 판매대에 놓인 책을 본 뒤에 탁 들어오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어요. 제목만으로는 감이 안 올 땐 안쪽의 목차도 보죠.”
그렇게 책을 고르고 사다 보니 책의 외형이 주는 매력도 알게 됐다. 두 번째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는 그의 취향이 반영된 책이다. 책의 크기나 두께, 종이 질, 글씨의 크기와 관련해 출판사에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책을 사면 어떻게 읽나요.
“일단 죽 훑어보고 읽을 순서를 정해요. 당장 읽을 책, 좀 있다가 읽을 책, 무게감이 있으니 시간을 두고 읽을 책으로요. 그런 뒤 바로 읽을 책 세 권을 차례로 읽어요. 검정 볼펜으로 마음에 남는 대목에 밑줄을 치면서. 그렇게 연달아 세 권을 읽은 다음 다시 첫 번째 책으로 가서 파랑 볼펜으로 메모를 하면서 읽어요. 그런 뒤 한 2주 정도는 그 세 권이 아닌 다른 책을 읽어요. 그런 뒤 다시 맨 처음 책으로 가서 빨강 볼펜으로 마무리하고, 독서노트에 정리를 하죠.”
-그럼 거의 사독을 하는 셈이네요.
“아이고, 좋은 책은요. 네다섯 번을 그렇게 읽고 버린 뒤에 다시 사요. ‘이 책은 정말 내 가슴에 새길 내용이 많다’ 하면 다시 사서 정독하면서 그 과정을 반복해요.”
-그런 과정을 반복한 책은 몇 권쯤 되나요.
“일고여덟 권쯤 될 거예요.”
무슨 책인지 궁금했지만, 그는 책 제목 밝히기는 꺼려했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도 그의 독서노트가 기반이 된 인터뷰집이지만,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이 언급되진 않았다. 이를테면 ‘손웅정이 좋아하는 책 몇 선’ 같은 리스트 말이다. “책은 자신의 생각대로, 취향대로 보는 것인데 내가 뭐라고 책을 추천하느냐는 게 손 감독의 생각이다.”(김민정 난다 대표)
-처음 책을 읽을 때 어떤 분야의 책부터 읽었나요.
“7, 8년쯤은 자기계발 분야를 파고들었어요. 삶의 통찰력이나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책들에 관심이 갔죠.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잭 웰치, 카네기,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들이죠. 그들의 삶이나 습관이 저와 흡사한 게 많더라고요.”
-반가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더 빠져들었죠. 겸손이나 부지런함 같은 그들의 습관을 보면서요. 습관을 만드는 건 나지만, 나중에는 그 습관이 나에게 기적을 만들어줘요. 책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책이 사람을 만들잖아요.”
-그다음은 어떤 분야에 빠져들었나요.
“리더에 대한 책, 또 역사에 관한 책도 읽었죠. (손흥민 선수 때문에) 독일이나 영국에서 살려면 일단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했으니까요. 우리나라 역사도 마찬가지고요.”
-독서노트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30대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초반에 쓴 걸 모조리 잃어버렸어요. 지금 갖고 있는 일곱 권은 흥민이가 열일곱 살 때 독일에 함께 나가 살면서 읽은 책들부터 써둔 거예요.”
-그간 읽은 책이 얼마나 될까요.
“세어 보질 않았어요. 양이 중요하겠어요. 30년 정도 됐으니까 꽤 되겠죠.”
거듭 질문하자 그는 “적어도 1년에 130권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말을 아꼈다. 많을 땐 300권 가까이도 읽을 테지만, 그의 말대로 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읽으셨다는 게 대단해요.
“꾸준한 반복이 기적을 만드니까요. 원석이 끊임없는 마찰로 보석이 되는 것처럼 배움이라는 마찰 없이는 성장할 수가 없잖아요.”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와 두 번째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에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행복이더라고요.
“젊어서 막노동판에서 일하고 다 찌그러진 프라이드를 타고 다닐 때도 나는 행복했어요. 감사하는 순간이 행복이에요. 헬렌 켈러가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잖아요. 문 앞에 행복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발밑에서 행복이 솟아오르는데, 멀리 나가서 네잎클로버를 찾을 일이 아니죠.”
아들 손흥민 선수에게도 그가 늘 하는 말이 이것이다. “흥민아,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 행복한 경기 하고 와라.”
-어릴 때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운동한 것도 아니었죠. 프로 4년 차에 부상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를 그만둬야 했고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며 살면서도 행복했던 비결은 뭔가요.
“남과 비교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프로 선수로 뛴 사람이 저런 일을 하냐’고. 그건 그 사람 인생이고요. 내 삶의 주도권, 지배권을 그들한테 넘겨줄 필요가 없잖아요. 내가 내 삶에 희망을 품고 개척하면서 부지런하게 살면 되죠.”
두 권의 책에서 그는 책에 여러 정의를 붙였다. ‘인생의 사용 설명서’,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고 변화시켜 온 존재’, ‘빈손으로 삶의 전쟁터에 내던져진 기분일 때 집어 든 무기’, ‘성장의 동반자’, ‘축구와 더불어 내 삶을 지탱해 온 축’, ‘결론은, 책’…. 손흥민 선수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도 그는 “아들이 책을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그중 마음에 남는 표현이 있었다. “내게 책은 유희의 도구가 아닌 절실한 생존의 도구다.” 그는 왜 책을 ‘절실한 생존의 도구’라고 했을까. 절박한 삶의 고비에 책을 붙들어 버틴 시간, 기도하듯 책에 매달린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들 손흥민 선수의 EPL 데뷔 시즌 후반기였다.
◇경기 투입 안 돼 이적 고민하던 토트넘 초기
-책을 두고 ‘절실한 생존의 도구’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100% 책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거든요. 미래를 여는 키는 바로 책을 든 손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엔 책을 두 권 읽은 사람이 한 권 읽은 사람을 지배하며 사는 시대가 올 거예요.”
-그렇게 절실하게 책을 붙들 정도로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나요.
“흥민이가 프리미어리그에 간 이듬해(2016년)였어요. 당시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이 경기에 투입을 안 해서 이적하겠다고까지 했죠. 실제 이적하는 것까지 다 얘기를 해놨어요. 그런데 보내지도 않으면서 경기엔 뛰게 하지 않는 거예요. 그때가 너무 힘들었어요. 한번은 그 힘든 걸 이기기 위해서 네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던 기억이 나요.”
-뭐에 관한 책이었나요.
“그건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책이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해서 읽었던 거네요.
“맞아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내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까. 그런 몸에 해로운 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한 적도 없고요. 그건 잠시 심리적으로 도피하는 거잖아요. 그때 거실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등을 대고 네 시간 동안 책을 읽었어요. 나중에 일어나려는데 몸이 굳어서 목을 숙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요.”
-너무 괴로워서 붙든 게 책이었군요.
“맞아요.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책을 읽고 나니 뭐가 달라졌나요.
“일단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죠. 그 시기엔 힘들 때마다 책을 들었어요.”
-기도 같은 거였네요.
“그렇죠. 힘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는 거 아니면 운동이니까요.”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랬나요.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죠. 저는 지금도 흥민이한테 얘기하거든요. ‘흥민아, 아빠는 너 축구 처음 시작한다고 할 때 너하고 축구만 봤어. 나는 지금도 그래.’ 연봉이고 뭐고 지금도 저는 그런 거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요. 배우는 무대 위에 있어야 행복하고, 축구 선수는 운동장에 있어야 행복한 거죠. 그런데 그땐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죠.”
당시 포체티노 감독은 손 선수를 좀처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승부가 결정된 후반 44분에 교체 투입하기도 했다. 대신 손 선수와 같은 포지션(날개 공격수)인 에릭 라멜라가 선발로 출전하곤 했다. 팬들 사이에선 “감독이 자신과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서 선호하는 것”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손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거의 토트넘을 떠날 뻔했다. 포체티노 감독한테 여기가 편안하지 않아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뛸 수 없다는 고통이 그만큼 큰 거군요.
“저는 그래요. 흥민이가 독일에 있든, 영국에 있든 그 팀에서 선발로 들어가서 경기를 하는 게 중요해요. 연봉은 덜 받아도 경기를 해야 선수는 발전하고 성장하거든요. 성공이 먼저가 아니에요.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어떤 수준에 오르면 자연스레 따를 수도 있죠. 저는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돈이 없지만, 돈이 인생에서 첫째인 적은 없어요.”
-손흥민 선수를 두고 ‘책을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하신 적이 있죠.
“그래서 좋은 책은 밑줄을 그어서 주기도 했죠. 애들이 다 크고 나선 잔소리하기 싫어서 지인들하고 함께 있을 때 넌지시 알아두면 좋을 책의 내용을 말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흥민이가 인터뷰할 때 말하는 걸 보곤 ‘아, 그때 그 내용이 마음에 남았나 보구나’ 싶더라고요.”
-축구를 가르쳐달라고 한 건 둘째인 손흥민 선수가 먼저였나요.
“초등학교 2학년 말쯤이었죠. 그때는 제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축구교실을 할 때였어요. 그전에도 따라와서 하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한 건 3학년 시작하면서였어요. 첫째(손흥윤 수석코치)는 시기적으로 좀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잠재력도 첫째보다는 둘째(손흥민 선수)가 확실히 나았죠.”
-‘축구가 무지하게 힘든데 그래도 할 거냐’고 세 번 다짐을 받고 시작했다고요.
“맞아요.”
-나중엔 아예 독일로 함께 가서 손흥민 선수 뒷바라지를 했으니 큰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큰아이한테는 ‘만약 축구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면 중간에 그만둬도 된다. 그런데 무엇이든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라. 행복하게, 네 삶을 사는 게 중요해. 그리고 네 뒤에는 아빠가 있어’라고 해주곤 했죠.”
-인터뷰를 보니 손 선수가 “내게 아버지는 축구 선배이자, 친구, 스승이다. 아버지는 모든 점이 완벽한 사람이다”라고 한 적이 있더라고요.
“(한참 미소를 지은 채 쉽게 입을 떼지 못하더니) 흥민이가 그렇게 말한 건, 지금 처음 들었는데요. 그저 항상 부지런하게 살려고 노력했죠. ‘오늘 대충대충 설렁설렁 살면 내일은 병든 열매밖에 못 건진다’는 생각으로요. 시간이 뭐겠어요. 인생의 자본금이잖아요. 저는 솔선수범도, 근검절약도 다 대물림된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TV를 보면서 혹은 휴대폰을 보면서 자식한테만 책을 보라고 하면 되겠어요.”
-손 선수가 이런 말도 했더라고요. “아버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다”고.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니에요. 흥민이가 성장하는 시간이었지만, 나도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그건 희생이 아니에요. 부모가 할 일을 한 거죠.”
그러더니 그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요즘 주변에 ‘내 나이 환갑을 넘었지만, 지금부터가 기적의 나이고 내 전성기야’라고 해요. 하하.”
그 전성기, ‘손웅정만의 시간’은 아마 첫 책을 출간한 2021년 10월부터일 테다. 그는 한국에 머무를 땐 SON축구아카데미의 감독뿐 아니라 저자로서 사인회나 강연회도 다닌다.
-그런 인생을 담은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를 내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죠.
“사인회도 다니고 그러는데요.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소중하더라고요. 얼마나 감사한가요. 저는 지방에 내려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올라오더라도 오신 분들 모두를 만나고 사인을 해드려요.”
그의 사인은 독특하다. 부친이 지어주신 이름인 클 웅에, 바를 정을 한자 약자로 적은 것이다. 사인도, 사인을 하는 모습도 바람 같다. 옆에서 보면 휙, 휙 소리가 난다.
-사인은 언제 만들었나요.
“첫 책 나오기 직전에 만들었어요. 워낙 간결해서 그 속도감이 좋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에너지가 넘친다고요.”
-사인회나 강연에서 독자들을 대면할 때 어떠세요.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첫 책을 낼 때 단 한 분한테라도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두 번째 책도 마찬가지예요. 거기다 부디 출판사에 폐 끼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말 이후에 오롯한 ‘손웅정의 시간’이 시작됐을 것 같아요.
“나이에 따라 자식하고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게 또 부모더라고요. 이제 아이들은 그들의 삶을, 저는 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죠.”
그는 손흥민 선수가 번 돈에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란 생각에서다(‘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맏아들인 손흥윤 수석코치가 가정을 이룬 뒤엔 아들 내외의 집으로 가는 일도 없다. 식사를 할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만날 일이 있어도 밖에서 만나는 게 그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손흥민 선수에게 조언을 해줄 때가 있을 텐데요.
“경기가 좋았던 날은 아무 말도 안 해요. 하지만 경기가 힘들었던 날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아주죠. 그러곤 말해줘요.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했어. 안 다쳤으면 됐다. 다음 경기를 하면 되잖아. 경기가 매번 좋을 수는 없어. 괜찮아.’”
지난 13일(한국시간) 열린 토트넘과 뉴캐슬과의 경기가 그랬다. 토트넘이 원정에서 홈팀인 뉴캐슬에 0 대 4로 패했다. 전화를 해 아들에게 말했다. “경기가 항상 좋을 수는 없어. 우리 인생하고 똑같아. 좋아서 시작한 축구잖아. 경기가 좀 안 좋아도 행복한 마음은 유지했으면 좋겠어. 뭣보다 안 다쳤으면 됐다.”
손 감독은 말했다. “아마 흥민이도 아버지가 된다면 제 말의 뜻을 알겠죠. 자식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보는 게 부모가 가장 바라는 일이란 걸요.”
-SON축구아카데미에서 훈련이 끝나면 일일이 유소년 선수들을 안아주시는 걸 봤어요.
“독일에 있을 때 한국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만나면 반가우니까 안아주기 시작했죠. 훈련이 참 혹독한데도 끝나면 아이들이 우르르 제 앞으로 와요. 안아달라고. (미소)”
-포옹의 힘은 뭘까요.
“한 번의 시범이 백 번의 설명보다 낫다고 하잖아요.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허그 한 번이 엄청난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해요.”
2019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직후 그와 아들의 포옹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장면이다. 토트넘은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어깨가 축 처진 손흥민 선수가 관중석의 아버지를 보곤 펜스를 넘어 다가왔다. 손 감독은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때 뭐라고 해주셨나요.
“’흥민아, 괜찮아. 안 다쳤잖아.’ 그러곤 말없이 안아줬죠.”
-그 시간이 8초쯤 되더라고요.
“그 정도는 돼야 심리적으로 전달이 되고, 마음도 회복될 테니까요.”
-만약 부상을 입으면 아버지 마음도 아프실 것 같아요.
“아이고, 스포츠에서 부상은 피할 수 없는걸요. 다치면 ‘그간 과속으로 달려왔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 그래요.”
-올해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선 경기장 밖에서 부상한 일이 발생했어요.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 간에 다툼이 있어서 크게 보도가 됐는데, 당시엔 손 선수에게 조언은 안 하셨나요.
“그런 일엔 절대 나서지 않아요.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죠.”
-그 사건으로 감독님 눈에 보인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실력은 겸손에서 나오고 교만은 무지에서 나오죠. 어떤 분야든 최고에 오른 사람들은 그런 점을 기억하고 더 예민하게 관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태극마크가 무슨 의미겠어요. 태극마크에 오천만 국민의 얼굴이 다 있는 거잖아요. 축구 시작할 때 다들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 다는 게 꿈이었잖아요. 그 의미와 무게를 늘 기억해야죠.”
-요즘은 어떤 분야의 책에 빠져 계신가요.
“노후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게 7년쯤 됐어요. 이제 후반생을 준비해야지요.”
-‘손웅정이 정의하는 행복’은 뭘까 궁금해요.
“감사하는 순간 행복하죠. 행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에요.”
-그럼 ‘손웅정이 정의하는 실패’는요.
“개구리에 빗대어 말하면 움츠린 상태죠. 멀리 뛰어나가려고요.”
-“앞으로가 전성기”라고 하셨어요.
“책을 읽으면서 성장할 내 미래가 기대되죠. 나이 칠십이 되든, 팔십이 되든 걷고 뛸 수 있는 한 우리 아카데미(SON축구아카데미) 학생들을 가르칠 거예요. 내가 무슨 덕을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유소년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내가 원하는 축구 색깔을 내보는 게 꿈이에요. 골을 넣어서 상대를 이기는 게 중요한 축구가 아니라 골을 넣으러 가기까지 과정, 그 경기장에서 나의 축구 색깔을 꼭 내보고 싶어요.”
그는 상상만 해도 좋은 듯 얼굴이 상기되기까지 했다. “책을 사면 ‘이 책엔 어떤 메시지가 들어있을까’ 호기심이 차오른다”고 말할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내 삶을 지탱해 온 두 축, 축구와 독서.” 과연 눈빛에서, 낯빛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두 책을 읽으면 ‘어떻게 이렇게 살지’ 싶은 생각이 든다. 새벽 세 시 반이면 알람 없이도 눈을 떠 청소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두 아들과 축구 훈련을 할 땐 자신의 운동량이 더 많았다. 그러니 아들들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손흥민 선수는 10대 시절 방송 인터뷰에서 “아빠의 몸을 갖고 싶다”고 했다. 손 감독은 지금도 그 몸을 유지하고 있다.
아들이 있는 영국에 머물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24인치 캐리어 하나가 다 차지 않을 정도의 짐이 소지품의 전부다. 운동장에 있을 땐 그의 선수 시절 별명처럼 스라소니 같지만, 실제 만난 그는 미소에 박하지 않았다. 처음 눈을 마주치자마자 ‘90도 인사’를 하는 건 또 어떤가. 인터뷰 도중 직원이 물을 가져다 줄 땐 말을 하다가도 두 손으로 받고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미소’와 ‘겸손’은, 그가 손 선수에게 누누이 강조해 온 삶의 원칙 중 하나다.
‘체하는 것’은 또 못 견딘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는 인터뷰 형식이다. 애초엔 두 권 분량이었다. 그런데 거의 절반을 손 감독이 들어냈다. “잘난 체하진 않았는지, 아는 체하진 않았는지” 보고 또 보고 빼고 또 뺀 것이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훌륭하게 비칠 것 같은 부분은 빼시는 것 같았다. 감독님 생각에 설득당하기도 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기도 하면서 합일점을 찾아나갔다”고 말했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엔 그가 독서노트에 적어둔 명언이 챕터마다 인용돼 있다. 그중 유일하게 책이 아닌 영화에서 따온 것이 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속 명대사다. “당신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요.”
결국, 그가 살아온 시간을 압축하면 그렇지 않을까. 그저 행함으로 주위의 사람들이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삶. 참 ‘웅정(雄正ㆍ크고 바르다)한’ 사람, 손웅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