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키운 손웅정의 지독한 독서법 “세 번 읽고 쓴 뒤 버린다”

입력
2024.04.24 11:00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번외편>손웅정①
15년 독서노트 기반으로 인터뷰집 출간
막노동ㆍ일용직 트레이너 할 때도 붙든 책
청소와 독서, 운동이 그의 평생 루틴
“아들도 ‘책 좋아하는 축구선수’ 됐으면”

거기, 책이 있었다. 그 자리에 성경이 있었다면 성경을, 경전이 있었다면 경전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란 틀에 박힌 표현이 가장 적확했던 시기. 손웅정(62)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지금도 ‘삶의 고비’로 떠올리는 시간이다.

손흥민(32ㆍ토트넘 홋스퍼) 선수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첫 시즌(2015~2016년) 때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당시 감독은 손 선수를 기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28경기 중 손 선수가 선발로 나온 건 13경기뿐. 총 출전 시간도 1,104분에 불과했다. 경기당 평균 39분 남짓 뛴 셈이다. 직전 시즌 분데스리가에선 30경기 중 2경기를 빼곤 모두 선발 출전했다. EPL로 옮긴 지 1년이 채 안 돼 이적을 고민한 이유다.

누구보다 괴로운 건 아버지 손 감독이었다. 선수가 경기를 뛰지 못할 때의 심정, 그로 인한 파장을 선수 출신인 자신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배우는 무대 위에 있어야 행복하듯, 축구 선수도 운동장에 있어야 해요. 경기를 뛰어야 성장하고 발전하니까. 감독이 경기에 투입하지 않으니 이적하겠다고까지 했는데 보내주지도 않았죠.”

그런 상황이 수개월 흘렀다. 그 고통의 시간에 손 감독과 함께한 건 책이었다. “한번은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책을 집어 들어서 네 시간을 그대로 앉아서 읽었어요. 나중에 일어서려는데 몸이 굳어서 목을 숙일 수가 없더라고요.”

술을 즐기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그에게 책은 친구이자, 스승이자, 바이블이다. “힘들 때마다 책을 들었어요.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극복할 방법이 책이더라고요.” 그가 “내게 책은 유희의 도구가 아닌 절실한 생존의 도구”라고 표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책은 그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이기도 하다. 그는 옷도 계절별로 상의 두 벌씩, 신발도 영국에 두 켤레, 한국에 두 켤레만 두고 산다. 그의 삶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표현처럼 “담박하다”.

애초에 ‘맨발’이었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의 곤궁한 초가집 셋째 아들에게 운동화는 로망일 뿐. 금세 땀이 차 미끄러지기 십상인 고무신 대신 그가 신을 수 있는 축구화는 맨발이었다. 그래도 운동화가 부럽진 않았다. 갈망의 대상은 책이었다. 축구부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도 공중화장실에 붙어있는 명언을 기억하려고 칸마다 열어서 보곤 적었다.

갈증을 해소한 건 서른이 다 되어서다. 그는 프로 4년 차에 예상치 못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조기 은퇴했다. 막노동에 일용직 헬스 트레이너로 ‘투잡’ ‘스리잡’을 할 때도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책을 읽었다. 하루를 청소와 운동, 독서로 여는 건 그의 오랜 루틴이다.

그는 책을 지독하게 읽는다. 좋은 책은 삼독(三讀)이 기본. 일독을 할 땐 와 닿는 구절을 검정 볼펜으로 밑줄을 쳐 가면서, 재독을 할 땐 파랑 볼펜으로, 삼독할 땐 빨강 볼펜으로 메모를 한다. 그런 뒤 책의 주요 대목에 자신의 생각까지 덧붙여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런 두툼한 독서노트가 최근 15년 것만 일곱 권이다. 그렇게 자기 것으로 만든 책은 버린다.

책과 함께 성장해 온 그의 이야기가 이달 20일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출판사 난다)로 출간됐다. 그는 ‘손흥민의 아버지’에서 ‘손웅정’으로, 인생의 새로운 시즌을 살고 있다. 예순을 갓 넘긴 그는 “예순은 마법의 나이”라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1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맨발의 축구선수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에 살던 손웅정은 어땠나요.

“전기도 안 들어와서 등잔불을 켜던 시절이었죠. 형님 두 분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도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생업 전선에 내몰릴 판이었다. 친지가 “장사를 배우라”거나, 마을 이장이 “신발 공장에 가는 건 어떻겠냐”고 할 때마다 그는 속으로 오기를 키웠다. 일찌감치 그가 정한 인생의 답은 축구였다.

-축구가 왜 좋았나요.

“1년에 한 번씩 청년 형들이 동네 대항 축구 대회를 했어요. 그걸 구경하려고 마을의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보곤 했죠. 그 공 소리에 그렇게 흥분될 수 없었어요. 축구공이란 걸 차보기도 전의 일이죠.”

-뻥 차는 소리 말인가요.

“맞아요. 게다가 공 하나를 놓고 서로 경합하고 뛰는 모습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게 축구와의 첫 만남인가요.

“맞아요. 꼭 축구를 해야겠다 싶었죠.”

‘첫 출전’은 교회 축구대회였다. 교회도 안 다니는 데다 축구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그를 친구들이 끌고 갔다.

-운동화가 없어서 맨발로 나가 골까지 넣었다고요.

“맞아요. 인생의 첫 골이죠.”

-어릴 때인데 아프지 않던가요.

“고무신은 땀이 차서 미끄러우니까 벗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땐 그래서 늘 맨발로 축구를 했어요. 그래서 상처가 많이 났죠. 특히 운동장에 라인 표시를 하려고 홈을 파놓은 곳들이 있거든요. 횟가루도 없을 때니까. 그런 데를 잘못 차면 살이 찢어져요. 그래서 지금도 흉터가 많아요.”

까만 발톱, 군데군데 검붉게 변한 굳은살들이 그때의 흔적이다.

-그런데 상대 팀 선수들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고요.

“980원짜리 범표 운동화. 그 시절엔 로망이었어요. 그러니까 가격도 잊히지가 않아요.”

-부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부럽다기보다 내가 공을 잘 차서 (축구에) 입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죠. ‘그럼 언젠가는 저걸 못 신겠냐’ 하면서.”

-의지가 대단하네요.

“운칠기삼이에요.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식당에서 저한테 축구를 제안했던 분들과 우연히 만나는 바람에 진짜 축구를 하게 됐으니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간절한 꿈이 있으면 그런 인연이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가 뛰는 걸 본 학교 체육 교사와 축구부 코치가 그에게 축구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단, ‘입단료’가 문제였다. 쌀 다섯 말. 축구부에서 합숙하며 먹을 밥값이었다. 그러잖아도 없는 살림에 아버지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랬던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들른 장터 식당 옆자리에 체육 교사와 코치가 앉아 자신들이 탐냈던 학생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 학생은 바로 손 감독이었다.

-인생을 바꾼 순간이네요.

“맞아요. 그때부터 축구를 하게 됐으니까.”

◇흥민이는 나와 다르게 해야 했다

-그런데 평소 ‘나는 내 축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다’고 하는 이유는 뭔가요.

“초·중·고교 시절 나는 오로지 축구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축구를 잘할까’ 이 생각만 하고 살았죠. (축구부) 애들이 다 쉬는 주말에도 연습했고, 다른 애들이 하루에 한 번 연습하면 나는 세 번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결국 ‘삼류’였어요. 내가 생각하는 목표만큼의 선수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것이 나의 수준이었어요.”

1984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결승전은 아직도 ‘축구선수 손웅정’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경기다. 그가 속한 명지대는 전반까지 상무에 1 대 2로 지다가, 후반 43분 그의 역전골로 우승한다. 심지어 그는 부상을 입어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채였다. 실업팀 최강이었던 상무가 손 감독을 ‘스카우트’한 계기다. 제대 후에도 현대 호랑이에서 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일화 천마 입단 2년 만에 은퇴해야 했다. 37경기 출장 7골(오른발 2골, 왼발 3골, 헤딩 2골). 그의 K리그 4년의 기록이다.

-흥윤(SON축구아카데미 수석코치)ㆍ흥민, 두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감독님의 축구부터 돌아본 건 왜인가요.

“결과를 바꾸려면 과정부터 바꿔야 했으니까요. 나처럼 되게 하지 않으려면 다르게 해야 했죠. 내가 한 걸 돌아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공부도 시작했죠. 세계 축구의 흐름을 알아야 하니까. 비디오테이프(VHS)에다 월드컵 경기,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다 녹화해 놓고 봤죠.”

손 감독만의 훈련법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리프팅 같은 기본기에만 7년을 쏟아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게 있나요.

“내가 게으름을 피웠다면 후회스러웠을 수도, 창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으니 후회되진 않아요.”

-책은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중·고교 시절에도 시합 다닐 때 공중화장실을 들르면, 문에 붙은 명언을 보려고 칸마다 열어 보곤 했어요. 그러곤 적어뒀죠. 그때는 시간도 없었지만, 책을 살 돈도 없을 때니까.”

-그럼 그렇게 보고 싶던 책을 보게 된 건 언제인가요.

“은퇴하고 나서죠. 막노동판에도 다니고 하루에 두세 가지 일을 할 때도 짬짬이 책을 봤어요.”

-책에 갈증이 있었군요.

“맞아요. 지금도 그래요. 주기적으로 서점에 가서 열두어 권씩 사거든요. 바로 책을 읽지 못할 때는 ‘내가 오늘 가져온 저 책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막 궁금하고 호기심이 일어요.”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뭔가요.

“일단 판매대에 놓인 책을 본 뒤에 탁 들어오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어요. 제목만으로는 감이 안 올 땐 안쪽의 목차도 보죠.”

그렇게 책을 고르고 사다 보니 책의 외형이 주는 매력도 알게 됐다. 두 번째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는 그의 취향이 반영된 책이다. 책의 크기나 두께, 종이 질, 글씨의 크기와 관련해 출판사에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지독한 독서법… 세 번 읽은 뒤 쓰고 버린다

-책을 사면 어떻게 읽나요.

“일단 죽 훑어보고 읽을 순서를 정해요. 당장 읽을 책, 좀 있다가 읽을 책, 무게감이 있으니 시간을 두고 읽을 책으로요. 그런 뒤 바로 읽을 책 세 권을 차례로 읽어요. 검정 볼펜으로 마음에 남는 대목에 밑줄을 치면서. 그렇게 연달아 세 권을 읽은 다음 다시 첫 번째 책으로 가서 파랑 볼펜으로 메모를 하면서 읽어요. 그런 뒤 한 2주 정도는 그 세 권이 아닌 다른 책을 읽어요. 그런 뒤 다시 맨 처음 책으로 가서 빨강 볼펜으로 마무리를 하고, 독서노트에 정리를 하죠.”

-그럼 거의 사독을 하는 셈이네요.

“아이고, 좋은 책은요. 네다섯 번을 그렇게 읽고 버린 뒤에 다시 사요. ‘이 책은 정말 내 가슴에 새길 내용이 많다’ 하면 다시 사서 정독하면서 그 과정을 반복해요.”

-그런 과정을 반복한 책은 몇 권쯤 되나요.

“일고여덟 권쯤 될 거예요.”

무슨 책인지 궁금했지만, 그는 책 제목을 밝히기는 꺼렸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도 그의 독서노트가 기반이 된 인터뷰집이지만,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이 언급되진 않았다. 이를테면 ‘손웅정이 좋아하는 책 몇 선’ 같은 리스트 말이다. “책은 자신의 생각대로, 취향대로 보는 것인데 내가 뭐라고 책을 추천하느냐는 게 손 감독의 생각이다.”(김민정 난다 대표)

-처음 책을 읽을 때 어떤 분야의 책부터 읽었나요.

“7, 8년쯤은 자기 계발 분야를 파고들었어요. 삶의 통찰력이나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책들에 관심이 갔죠.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잭 웰치, 카네기,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들이죠. 그들의 삶이나 습관이 저와 흡사한 게 많더라고요.”

-반가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더 빠져들었죠. 겸손이나 부지런함 같은 그들의 습관을 보면서요. 습관을 만드는 건 나지만, 나중에는 그 습관이 나에게 기적을 만들어줘요. 책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책이 사람을 만들잖아요.”

-그다음은 어떤 분야에 빠져들었나요.

“리더에 대한 책, 또 역사에 관한 책도 읽었죠. (손흥민 선수 때문에) 독일이나 영국에서 살려면 일단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했으니까요. 우리나라 역사도 마찬가지고요.”

-독서노트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30대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초반에 쓴 걸 모조리 잃어버렸어요. 지금 갖고 있는 일곱 권은 흥민이가 열일곱 살 때 독일에 함께 나가 살면서 읽은 책들부터 써둔 거예요.”

-그간 읽은 책이 얼마나 될까요.

“세어 보질 않았어요. 양이 중요하겠어요. 30년 정도 됐으니까 꽤 되겠죠.”

거듭 질문하자 그는 “적어도 1년에 130권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말을 아꼈다. 많을 땐 300권 가까이도 읽을 테지만, 그의 말대로 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읽으셨다는 게 대단해요.

“꾸준한 반복이 기적을 만드니까요. 원석이 끊임없는 마찰로 보석이 되는 것처럼 배움이라는 마찰 없이는 성장할 수가 없잖아요.”

◇내 행복의 비결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와 두 번째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에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행복이더라고요.

“젊어서 막노동판에서 일하고 다 찌그러진 프라이드를 타고 다닐 때도 나는 행복했어요. 감사하는 순간이 행복이에요. 헬렌 켈러가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잖아요. 문 앞에 행복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발밑에서 행복이 솟아오르는데, 멀리 나가서 네잎클로버를 찾을 일이 아니죠.”

아들 손흥민 선수에게도 그가 늘 하는 말이 이것이다. “흥민아,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 행복한 경기하고 와라.”

-어릴 때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운동한 것도 아니었죠. 프로 4년 차에 부상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를 그만둬야 했고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며 살면서도 행복했던 비결은 뭔가요.

“남과 비교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프로 선수로 뛴 사람이 저런 일을 하냐’고. 그건 그 사람 인생이고요. 내 삶의 주도권, 지배권을 그들한테 넘겨줄 필요가 없잖아요. 내가 내 삶에 희망을 품고 개척하면서 부지런하게 살면 되죠.”

두 권의 책에서 그는 책에 여러 정의를 붙였다. ‘인생의 사용 설명서’,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고 변화시켜 온 존재’, ‘빈손으로 삶의 전쟁터에 내던져진 기분일 때 집어 든 무기’, ‘성장의 동반자’, ‘축구와 더불어 내 삶을 지탱해 온 축’, ‘결론은, 책’…. 손흥민 선수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도 그는 “아들이 책을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그중 마음에 남는 표현이 있었다.

“내게 책은 유희의 도구가 아닌 절실한 생존의 도구다.”

그는 왜 책을 ‘절실한 생존의 도구’라고 했을까. 절박한 삶의 고비에 책을 붙들어 버틴 시간, 기도하듯 책에 매달린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들 손흥민 선수의 EPL 데뷔 시즌 후반기였다.


※[김지은의 ‘삶도’] 손웅정②로 이어집니다. 기사는 25일 목요일 오전 11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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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사진= 최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