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졸업 연설 취소"… 또다시 '반유대 논란' 볼모된 미국 대학

입력
2024.04.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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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단체, '친팔레스타인' SNS 게시물 문제 삼아
미 USC "보안 우려"… 졸업생 대표 연설 취소 결정
"침묵 강요에 학교가 굴복"… 표현의 자유 시험대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미국 대학가를 휩쓴 '반(反)유대주의 논란'이 다시 도졌다. 5월 졸업 시즌을 앞두고 미국 서부 명문 남가주대(USC)가 무슬림인 졸업생의 연설을 취소하면서다. 이 졸업생 대표는 '시오니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운동)'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유대인 단체의 표적이 됐다.

USC, '보안' 이유로 친팔레스타인 졸업생 연설 취소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CNN방송에 따르면, USC는 올해 졸업생 대표로 뽑힌 아스나 타바섬의 졸업 연설을 취소했다. 다음 달 6만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릴 졸업식의 보안을 고려했다는 게 대학 측 설명이다. 다만 타바섬의 연설을 제외한 학위수여식과 축사 등은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조치로 미국 대학 내 반유대주의와 표현의 자유 논란이 재점화됐다. 남아시아계 무슬림 1세대 이민자인 타바섬이 자신의 SNS에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 의사를 밝힌 게 빌미가 됐기 때문이다. 타바섬의 SNS 계정 상단에는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슬라이드쇼의 링크가 고정돼 있다. 의생명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량학살에 대한 저항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USC 내 유대인 단체 '이스라엘을 위한 트로이 목마'는 타바섬의 SNS를 거론하며 그의 졸업생 대표 선정을 재고할 것을 대학 측에 촉구한 바 있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타바섬이) 반유대주의와 반시오니즘을 공개적으로 퍼뜨린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메일·전화·편지 등을 동원한 친(親)이스라엘 측 항의가 잇따르자 결국 USC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앤드루 구즈만 USC 교무처장은 지난 15일 학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분명히 하자면 이번 결정은 표현의 자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캠퍼스의 보안과 안전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관한 문제"라고 밝혔다.

유대인 단체 이의제기 후폭풍… 표현의 자유 논란 재점화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타바섬은 "내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증오 캠페인에 학교가 굴복했다"고 반발했다.

미국 내 최대 무슬림 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도 "보안에 대한 불성실한 우려 뒤에 비겁한 결정을 숨길 수 없다"며 USC를 비판했다. 아누즈 데사이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 로스쿨 교수는 "타바섬의 연설을 취소한 게 그의 견해 때문이라면 표현의 자유 문제로 보인다"며 "(안전 문제라면) 보통은 보안 강화를 말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이번 사태는 앞서 하버드대·펜실베이니아대 총장 사퇴까지 불렀던 미국 대학가 내 반유대주의 논란 재점화에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대학 내 표현의 자유도를 조사해 순위를 매기는 비영리단체 '개인 권리와 표현을 위한 재단(FIRE)'의 잭 그린버그 변호사는 "졸업식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라며 "특히 가자 분쟁 관련 소셜미디어 상 견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대학이 행사를 취소하고, 학생을 검열하는 매우 명백한 사례"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앞서 뉴욕시립대 로스쿨도 지난해 예멘 출신 파티마 무사 무함마드가 졸업 연설서 "자본주의, 인종차별, 제국주의, 시온주의에 맞서 싸우자"고 촉구한 후 올해부터 학생들이 졸업식 연사를 선택하는 전통을 폐기했다고 NYT는 전했다.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