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규제법을 입법한 가운데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국내 사정에 맞는 AI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AI 기본법안'의 빠른 통과를 주문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AI전략최고위협의회' 법제도 분과 1차 회의에서 오병철 연세대 교수는 "EU의 AI법은 세계 최초의 AI 규제에 관한 일반법으로 위험 기반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인공지능 규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우리만의 AI 일반법을 마련해 AI 발전 강국으로서 국제적 논의를 끌고 가는 입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U의 AI법 입법이 파급력이 큰 것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 2대 소비 시장인 EU가 규제를 적용하면 여러 나라의 다국적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브뤼셀 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I 개발 기업이 많은 미국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하겠지만 투명성과 공정성, 책임성 등 기본적으로 AI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 자체는 대동소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현장에선 한국의 AI 법제도를 위해선 진흥에 초점을 맞춘 '유연한 법제'를 주문하는 의견이 여럿 나왔다. 강지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EU처럼 AI기본법에 '금지 대상 AI'를 신중한 논의 없이 서둘러 규정하기보다는 과기정통부 주도로 소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AI 기본법의 빠른 제정을 바라는 의견도 나왔다.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은 AI 산업 진흥 위주라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도 "산업의 진흥에 초점을 맞춘 최소 규제 법안이라면 이번 회기 내 통과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의견을 냈다.
이날 행사는 과기정통부가 4일 띄운 AI전략최고위협의회의 첫 분과 회의였다. 과기정통부가 'AI G3(3대 강국)' 달성을 목표로 통합된 관점에서 국가 AI 혁신을 이끌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며 조직한 협의체다. 과기부는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사피온·퓨리오사AI·딥엑스 등 AI 반도체 전문 기업 대표자를 초청해 AI 반도체 분과 회의도 열었다.
강도현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현재 세계는 AI와 이를 뒷받침하는 AI 반도체에서 국가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우리가 가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모아 대한민국이 AI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AI G3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