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억 전세사기' 30대 빌라왕, 1심서 징역 12년

입력
2024.04.16 15:57
무자본 갭투자 방식... 임차인 70명 피해
法 "탐욕이 타인에 피해 준다면 멈춰야"

서울·인천·경기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 수법으로 임차인 70명을 상대로 140억 원대 전세사기 범행을 저지른 30대가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사기·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모(37)씨에게 16일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2019년부터 2022년 4월까지 다세대주택을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사들인 뒤, 임차인 70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44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자신의 탐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탐욕을 멈춰야 한다"면서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임대사업을 벌인 최씨에게 책임이 있다"고 질책했다.

최씨는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임차인들과 계약 당시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속인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기망(허위사실을 말해 상대방을 착오에 빠트리는 것) 행위가 없었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최씨는 자기자본을 동원해 대규모로 빌라를 매수한 것이 아니라 무자본 갭투자를 통해 빌라를 소유하게 됐다"면서 "이는 계약 종료 시점에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반환해야 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라고 최씨 주장을 물리쳤다. 자기자본 없이 빌라를 매입한 최씨가 보증금을 마련해 반환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계약 단계에서부터 세입자들을 속일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백 채 빌라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임차인들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 사실을 임차인들이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적어도 같은 조건으로 체결하지 않았을 거란 점에서 설명 의무를 행하지 않은 기망행위"라고 강조했다.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임차인 4명에게 7억6,000만 원의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최씨와 함께 기소된 컨설팅 업자 정모(36)씨도 이날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최씨와 달리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들 중 일부와 합의한 점을 참작한 결과다. 보석 상태인 정씨는 재판에 성실히 출석한 점 등을 이유로 법정구속되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자문업체 직원과 명의 수탁자 등 21명에 대해서는 각각 80만~1,2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공인중개사가 아님에도 부동산 광고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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