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보조금 약 9조 원을 받는다. 대신 미국 내에 대규모 반도체 제조 시설 집적 단지(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약 62조 원을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안에 구축한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구상에서 유도된 거래다.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에 최대 64억 달러(약 9조 원)의 직접 보조금을 제공한다고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미국에서 세계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선도적 제조 클러스터가 텍사스주(州) 중부에 조성되도록 돕기 위한 자금 지원”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받게 될 보조금은 미국 인텔과 대만 TSMC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인텔과 TSMC에는 각각 85억 달러와 66억 달러가 지급된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따라 첨단 반도체에 배정한 보조금 280억 달러 중 세 업체에 돌아간 자금의 비율은 76.8%(215억 달러)에 달한다.
보조금은 투자 ‘마중물’ 성격이다. 현재 170억 달러를 들여 텍사스주 테일러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와의 보조금 협상 과정에서 투자액을 450억 달러(약 62조3,000억 원)로 늘렸다. 테일러에는 4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와 2나노미터 로직 반도체(논리적 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 양산을 주로 맡을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장 2곳과 연구·개발(R&D) 전용 팹(fab·반도체 생산 공장), 패키징(후공정) 시설 등이 들어선다.
삼성전자는 또 기존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을 확장해 미국 국방부 등에 직접 수주받은 맞춤형 반도체를 공급하는 데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러몬도 장관은 “삼성전자의 미국 내 핵심 R&D, 대규모 제조, 패키징, 미래 지원 등이 전부 텍사스 내에서 이뤄지게 된다”며 “최첨단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래 지원은 기술 인력 양성이다. 투자금 중 4,000만 달러는 ‘워크포스 펀딩(인력 육성 기금)’에 쓰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이 시설들은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에 필수적이고 미국의 국가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며 “삼성의 대미 투자 발표는 한미 동맹이 곳곳에서 기회를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상무부는 삼성 클러스터 조성 과정에서 1만7,000개의 건설 일자리와 제조업 일자리 4,500개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오스틴의 중등·고등·직업 교육기관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한편, 각 공장의 노동조합 결성도 허용할 전망이다.
투자 대비 보조금 비율 면에서는 ‘빅 3’ 중 삼성전자가 가장 선방했다. 1,000억 달러 투자 예정인 인텔이 8.5%, 650억 달러를 투자하는 TSMC가 10.1%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14.2%에 달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8월 서명한 칩스법은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기업들에 보조금과 R&D 지원금으로 총 527억 달러를 5년간 지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삼성 투자 지원 발표는 수십 년간 아시아에 집중돼 온 최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다시 미국에 유치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 계획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