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에너지 동맹’ 전선 구축에 착수했다. 장관급 정책 협의의 ‘셔틀(왕복)’식 정례화를 추진하면서다. 9월쯤 한국에서 첫 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 주미국 한국대사관에서 한국 특파원단 대상 간담회를 열고 미국 방문 성과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에 다녀간 뒤 1년 만에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과 한미 에너지장관 회담을 갖고 “배터리, 전력 기자재, 재생에너지, 수소, 원전을 아우르는 양국 간 포괄적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장관급 ‘에너지 정책 대화’(EPD)의 올해 내 개최를 제안했고, 양국 장관 간 소통 채널을 활성화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EPD는 한미가 2년 전 설치에 합의한 장관급 협의 플랫폼이다. 하지만 아직 가동된 적은 없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활성화를 건의하고 나선 것은 에너지 분야 협력이 양국에 호혜적일 뿐 아니라 ‘원 팀’이 될 경우 해외 진출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협력 기반이 공고해지면 기업의 장기 프로젝트 수립이 가능해진다. 국내 기업 투자로 미국 내에 지어진 반도체와 2차 전지 공장의 전력 수급 문제도 정부 간 논의가 필요한 의제다.
조율 대상에는 양국 기업 간 갈등도 포함된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소송전 중인데, 자사 기술로 만든 원전을 허락 없이 해외에 팔려 한다며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소하며 벌어진 일이다. 민간 기업 간 분쟁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양측이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아 원만하게 문제를 풀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게 정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는 상·하반기 양국을 오가며 이뤄질 공산이 크다. 매년 3월쯤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에너지 관련 국제회의 ‘세라 위크’(CERA week)와 해마다 9월쯤 한국에서 열릴 기후 위기 콘퍼런스를 계기로 활용하는 방안을 양국이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 장관은 이번 방미 기간 미국 측과 공급망 관련 한미 협의 및 한미일 3국 산업장관회의를 상반기 내에 각각 개최한다는 계획에도 합의했다. 그는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한미 공급망·산업 대화를 통한 폭넓은 성과 도출 방안을 논의했고,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신설에 합의한 3국 산업장관회의에서의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우리 기업의 원활한 대미 투자를 위해 미국 행정부와 상·하원 의원들에게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우리 기업들에 충분한 보조금·세액공제 지원이 차별 없이 이뤄지게 해 달라고 촉구하고, 현지 생산 설비 완공을 위해 필요한 단기 전문 인력에 비자가 원활하게 발급되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장비 등의 대(對)중국 수출 통제에 참여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2월 대외무역법을 개정한 정부는 현재 관련 시행령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정부는 17일 발효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협정 운영 기구 중 하나인 위기대응네트워크(CRN)의 의장국을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공급망협정은 공급망 관련 첫 다자 국제 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