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세종시 인사혁신처 인사조직과 박찬인(51) 주무관의 출근길은 조금 느리다. 마주치는 동료들에게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환한 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한다. 박 주무관은 1급 지체 장애로, 2013년 중증장애인 국가공무원 9급 경력채용으로 입직했다. 척추 전체가 대나무처럼 일자로 굳어 움직이기조차 어렵지만 얼굴에는 늘 미소가 가득하다. 박 주무관은 현재 인사조직과에서 계약, 국유재산, 물품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박 주무관에게 장애가 생긴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허리가 욱신거린다' 고 느낄 정도였는데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희귀질환인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으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목뼈부터 엉덩이뼈까지 척추 전체가 굳어버렸고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10년간 집안에 갇혀 지냈다.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물론이고 걷기조차 어려웠다. 박 주무관은 "남들보다 5년, 10년 점점 뒤처진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다행히 고관절을 인공 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이 개발돼 수술 후에는 어색하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됐다.
박 주무관의 첫 도전은 '운전'이었다. 면허를 딴 뒤에는 일자리도 찾아 나섰다. 컴퓨터를 독학해 서른 무렵 출판사 디자인 일을 시작했다. 2년 후에는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집 근처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새 일자리를 찾았다. 이후 퇴근 후 매일 도서관을 찾아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렇게 8년 동안 사회복지사, 정보처리 기사, 사회조사분석사 등 20개 넘는 자격증을 땄다. 전국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해 전자 출판, 컴퓨터 수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 주무관은 "세상 밖에 나와 하나하나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며 "주변에서는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의아해 했지만, 사소한 목표라도 노력해서 이루는 데에 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일하며 사회복지사인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박 주무관은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며 일자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장애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중증장애인 국가공무원 경력채용에 지원했고, 고용노동부에 입직했다. 고용부에서는 사회적 기업과 장애인을 연계하는 일을 했고, 2016년 인사처로 전입해 장애인 채용제도 업무를 맡았다.
박 주무관은 장애는 '살아가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 주무관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었지만, 장애 때문에 좌절하거나 위축된 적은 없다"며 "살아가는 형태와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듯 장애인도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 일자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주무관은 "일자리가 있으면 자립할 수 있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국가의 보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인의 자활의지만큼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박 주무관은 "장애인들은 소득이 생기면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나 생계 급여를 못 받기 때문에 오히려 일자리를 얻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의 자립의지를 꺾지 않는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주무관은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단기 일자리부터 인턴, 계약직 등 다양한 일자리에 장애인 전형을 만들어 장애인도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소한 도전부터 하나하나 해나가고, 작은 일자리부터 시작해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가는 단계를 밟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