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부터 결혼을 허용하자", "12년 학제를 9년제로 감축하자".
지난달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에선 저출생 문제 타개를 목표로 한 온갖 기기묘묘한 제안들이 쏟아졌다. 현행법상 남성은 22세, 여성은 20세인 결혼 가능 연령을 공히 18세로 낮추면, 출산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이 대표적이었다. 구시대의 악습으로 평가됐던 조혼 제도를 부활시키자는 제안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초등학교 6년을 5년으로, 중·고교도 3년에서 2년으로 각각 단축시켜 9년제 학제로 개편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15세 무렵에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면, 결혼·출산 계획도 그만큼 앞당겨지지 않겠냐는 취지다. 황당한 주장이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이 같은 제안까지 내놨겠느냐는 외신 반응이 뒤따랐다.
저출생 문제가 중국의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중국 인구는 2022년 말 기준 14억1,1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85만 명 줄었다. 중국에서 인구가 감소한 것은 61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명을 기록했다.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0.72명)을 바싹 따라잡았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인구가 14억 명대를 밑돌 것"(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임은 물론이고 "2100년쯤에는 5억 명대로 급감할 것"(호주 빅토리아대 정책연구센터)"으로 전망된다. 막강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으로선 2050년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 올라서겠다는 '중국몽' 실현은커녕 현 경제 수준 유지조차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저출생 현상은 '산아 제한' 정책 폐지 뒤 뚜렷해졌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중국 출생아 수는 1,604만 명을 기록한 뒤 2012년 1,635만 명, 2013년 1,640만 명, 2014년 1,687만 명으로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15년 1,655만 명으로 잠시 하락했다가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두 자녀까지 허용한 2016년 1,883만 명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때가 정점이었다. 2017년 출생인구는 다시 1,723만 명으로 떨어졌고, 2018년 1,523만 명, 2019년 1,465만 명, 2020년 1,200만 명으로 빠르게 감소했다. 2021년 기존 두 자녀 정책을 세 자녀로 확대했지만 오히려 1,062만 명으로 떨어졌고 2022년에는 956만 명을 기록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밑돈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출생아 수도 902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공정원은 "올해 중국 출생 인구는 700만∼800만 명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항일전쟁 시기(1937∼1945년) 수준이다.
중국 저출생의 원인은 중국보다 먼저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일본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육아 부담'이다.
중국 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은 '사교육 공화국'이라는 한국 못지않다. 중국 유와인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6.9배로 한국(7.7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본(4.26배), 미국(4.11배)이 뒤를 이었다. 중국이 사교육 규제 정책을 펴기 이전인 2017년 HSBC가 추산한 중국 사교육 시장은 1,200억 달러(약 140조 원)로 단연 세계 최고다.
1980년 이후 가정을 꾸린 중국 부부들은 한 자녀 정책이 폐지되기 이전까지 35년간 한 명의 자녀만 키웠다. 가난을 겪었던 중국 부모들은 하나뿐인 내 아이는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워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이는 사교육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부모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고도 성장세가 꺾인 중국 경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며 "신생아 수와 청년실업률이 반비례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구직·결혼을 포기한 탕핑(躺平·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움) 세대 등장으로 저출생은 필연이 됐다는 얘기다.
출산율의 선행 지표 격인 혼인율도 절망적이다. 2022년 중국 초혼자 수는 1,051만 명으로 역대 최저였던 전년보다 106만 명 감소했다. 초혼자 수가 1,1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85년 통계 작성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2013년 2,385만 명에서 약 10년 만에 절반 이하로 급감한 것이다.
결혼 연령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0년 24.89세였던 중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2020년 28.67세로 3.78세 올랐다. 제로코로나 정책 시기(2020~2022년) 중국인들이 결혼을 미뤘던 추세를 감안하면 현재 초혼 연령은 30세 수준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늦은 결혼은 가임 기회가 그만큼 적어짐을 뜻하는 점에서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 더욱 어렵게 한다.
물론 중국 정부도 보고만 있진 않다. 중국 항저우시는 지난해 셋째 아이 출산 시 2만 위안(약 377만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윈저우시는 첫째만 낳아도 3,000위안(약 56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심지어 일부 도시는 25세 미만 여성이 결혼만 해도 현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도 베이징 등 대도시는 지난해부터 체외 수정, 배아 이식, 정자 보관 등 12가지의 불임 치료에도 의료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쓰촨성 등은 중국에서 금지됐던 혼외자 출생 신고도 허용했다. 광둥, 안후이, 산시성 등도 비슷한 법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부동산·빅테크·사교육 등 시진핑 국가주석이 악착같이 규제했던 3개 시장 중 유독 사교육만 여전히 규제 대상에 남아 있는 점 역시 교육비 부담 경감을 통해 저출산 흐름을 늦추기 위해서다.
반면 이런 노력이 출산율 반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은 드물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일단 저출생 문턱에 들어선 후에 정부 정책으로 출산율 상승에 성공한 국가는 역사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인구통계학자들이 2000년대 초반 고안한 '저출생의 함정'은 한 국가 출산율이 1.4명 이하로 떨어지면 이를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다는 가설이다. 현재까지 선진국 가운데 이 가설을 뒤집은 곳은 없다. 경기 침체에 따른 취업난이 청년들의 결혼·출산 의지를 꺾고 있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백약이 무효하다는 뜻이다. 실제 중국의 각 지방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구체적 효과를 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일부 서방 학자들은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는 제언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그나마 미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저출생 고통을 적게 겪고 있는 것은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으로 불리는 다인종·다민족 수용 정책 덕이었다며 "중국이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애덤 청 홍콩침례대 사회학 교수도 미국 타임지에 "중국 저출산 해법은 인구 절벽으로 향하는 흐름을 뒤집기 충분치 않다"면서 "다문화주의·개방성을 확대해 인구 정책에 이민을 포함시켜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조언했다.
자국민 출산에 인센티브를 쏟을 게 아니라, '이민자 유치'로 정책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지만, 현실적 대안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시 주석은 10년 넘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몽) 실현을 자신의 집권 명분으로 삼아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공산당은 수천 년간 중국이 단일 혈통을 이어왔다는 주장을 통치 이념에 반영해왔다"고 짚었다. 노동력 유지를 위해 국가적 근본 이념인 중화주의를 희생시키긴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결국 14억 인구가 금세기 내 5억 명대로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은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미국 타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중국이 겪는 인구학적 역풍은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수십 년간 약화시킬 것이라는 데 학계 이견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스튜어트 지텔 바스텐 칼리파대 사회학 교수는 "저출생 흐름을 인정하고,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현실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 국무원은 올해 초 '실버 경제 발전 및 노인 복지 증진에 관한 의견'이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실버 경제'라는 표현이 정부 공식 문건에 등장하긴 처음이었다. 아이를 낳으라고 부르짖으면서도 내심 자신들의 정책이 실패할 것임을 이미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