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2년 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승한 것은 보수세력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2030남성과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중도층까지 결합해 광폭의 반(反)문재인 연합을 꾸린 영향이 더 컸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류는 자신들이 우월한 결과라고 착각했다. 이후 국정운영은 보수 일변도로 흘렀다. 중도층과 2030남성은 홀대받고 심지어 '팽' 당했다. 범보수세력은 쪼그라들고 '윤핵관'과 그 추종자만 남았다. 4·10 총선 참패는 이 같은 '뺄셈 정치'의 예고된 결말이었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선거 막판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중도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이후 여권 주류는 안 의원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안 의원이 지난해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대통령실과 윤핵관은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진복 당시 대통령 정무수석은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을 비판하는 안 의원을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수직적 당정관계를 드러낸 오만의 극치였다. 그러나 당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쓴소리를 해야 할 초선 의원들은 반대로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막기 위해 연판장을 돌리고 나섰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 손잡은 김기현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서였다.
여권 주류는 대선에서 2030세대 남성들의 윤 후보 지지를 이끌어낸 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도 내쳤다. 당 중앙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의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윤 대통령을 향한 반발 등을 문제 삼아 1년 6개월 중징계를 내려 당대표 자리에서 몰아냈다. 윤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를 겨냥해 "내부 총질이나 일삼는다"고 냉대했다. 이 전 대표가 '토사구팽' 당하면서 2030세대는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다.
심지어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상대로도 뺄셈 정치를 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11일 본보 통화에서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대처 과정과 원만하지 못한 의대 정원 확대가 심판 정서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군 예비역과 의사라는 전통적 지지층과도 척을 진 것이다.
스스로 입지를 잔뜩 좁히면서도 외연 확장에는 소홀했다. 총선 후보 공천은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조용한 공천'을 명분으로 텃밭 지역구 대다수를 윤핵관과 중진, 현역 의원들에게 줬다. 그 결과 당이 참패한 가운데서도 권성동 김기현 이철규 윤한홍 박성민 박수영 등 윤핵관 의원들은 전부 당선됐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여권 주류는 그동안 연합할 수 있는 세력을 고사시켜 왔고, 그 결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기간 내내 혼자 뛸 수밖에 없었다"면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친이재명계가 친문재인계와 손을 잡으며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