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권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간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여부에 상반된 목소리를 내던 양측이 이번엔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관련 법을 두고 격돌했다.
10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 하원이 미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의 일몰 시한을 연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상정할지 표결한 결과, 찬성 193 대 반대 228로 부결했다.
702조는 미국 정부가 해외 거주 외국인의 통신 내용을 영장 없이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및 통신 회사에서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2008년 제정됐다. 미 첩보 활동에 필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지난해 연방수사국(FBI)이 그간 자국민의 통신 정보까지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이날 부결은 공화당 내분 탓이 크다. 개인 정보를 중시해 온 민주당 의원들 대다수는 “자국민 보호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며 해당 조항의 연장을 거부하고 있었다. 반면 공화당 의원 대다수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원안 그대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 미 하원 공화당과 민주당 의석수는 각각 218석 대 213석이므로, 공화당 전원이 동의하면 하원 과반(217석)을 확보할 수 있다. 존슨 의장은 이날 “702조는 국가 정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연장을 꾀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대하며 존슨 의장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게 됐다. 각종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FBI가 702조를 자신과 관련된 수사에서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전날에도 “그들(미 정보당국)이 내 대선 캠페인을 염탐했다. FISA(702조)를 없애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친(親)트럼프’ 성향 의원들이 이날 표결에서 대거 이탈했고 결국 부결로 이어진 것이다. 702조는 이달 19일 일몰을 앞두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친트럼프 의원들이 702조 연장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존슨 의장에게 통렬한 패배를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최근 존슨 의장은 우크라이나 지원 의사를 밝히며 이 문제에 반대 목소리를 이끌어 온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 탓에 친트럼프 성향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지난달 22일 존슨 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발의하기까지 했다. 존슨 의장은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