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정권을 무섭게 심판했다

입력
2024.04.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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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국정운영 방식 쇄신해야
민주당, 독주 대신 타협의 정치를

4·10 총선 민심은 매서웠다. 윤석열 정부 2년을 무섭게 심판했다.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과반 승리와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 격전지가 50곳 이상일 정도로 여야 경쟁이 치열했지만, 표심은 정권심판론에 손을 들었다. 31.3%에 달하는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이나 32년 만의 최고 투표율(67%·잠정)에서 드러났듯 정부 견제를 위한 야권 지지 열기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비례)은 174~175석이 예상된다. 진보계열 정당이 4년 전에 이어 연달아 원내 과반 이상을 장악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조국혁신당 12석 등을 포함하면 범야권은 190석 가까이 획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정부는 22대 국회에서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주요 개혁과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국민의힘·국민의미래(비례)는 개헌 저지선(101석)을 지키는 109석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여소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 사례가 된 현실을 직시하고 전면적인 국정기조 쇄신에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유권자들이 보낸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방식으로 나라를 운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은 정치권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으나 개선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 여당 패배로 민심은 경고를 울렸지만 바뀌지 않았다. 총선 전 밀어붙인 의료개혁조차 국민 불편이 커져가는 반면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했다. 결국 유권자들은 윤 정부의 집권 2년 국정운영에 대해 '실정'이라는 냉혹한 중간평가를 내린 셈이다.

윤 정부는 정치지형의 격변을 앞두고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의 야당 무시와 야당 주도의 입법에 맞선 거부권 행사 등 대결 정치 또한 국민의 눈엔 협량과 배타의 정치로 비쳤을 터이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등 큰 행사 때나 악수를 나누는 정도였고, 야당 대표와 제대로 된 회동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정부 견제라는 야당 본연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대선 때 약속한 '공정과 상식'이 퇴색된 인상을 줬다. 윤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운영의 과감한 방향 전환을 조속히 실천해야 한다. 불통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남은 3년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역시 '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집권당다운 비전과 역량을 국민 앞에 보여주지 못했다. 거친 언사를 남발하는가 하면 돌연 '운동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중도층 유권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소용돌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야당 탓만으론 집권당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단의 변화에 당장 나서지 않으면 미래가 암울하다.

민주당은 오만함을 경계해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것이지 자신들이 잘했다고 오판해선 안 된다. 현 정부 임기 3년간 입법을 통한 국정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진 만큼 동반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21대 국회처럼 ‘입법 독주’라는 힘의 정치에 의지할 경우 민심의 회초리를 맞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국혁신당의 돌풍 현상은 심각한 공천파동을 겪은 '이재명의 민주당'에 '교차투표'를 통한 '이중심판' 성격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정권을 응징하면서도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을 상당 부분 몰아줘 균형을 맞춘 점이 주목되기 때문이다.

나라는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저성장과 고물가로 성장동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특히 서민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형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우리 사회 난제이고 노동 연금 교육 등 4대 개혁 또한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글로벌 경쟁 심화, 미중 갈등 격화와 북한의 핵 미사일 폭주 등 우리의 경제, 안보 지형 또한 갈수록 험악해지는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중심이 돼야 할 정치가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가 돼서는 곤란하다. 국가의 운명과 미래가 22대 국회의 어깨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표로 드러난 주권자의 요구를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총선 기간 사분오열된 국론을 통합·치유할 의무도 정치권에 있음을 명심하고 이른 시일 내 타협과 양보의 새로운 정치에 나서기 바란다. 방탄 국회와 같은 반의회주의적 행태가 반복될 경우 민심은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비례대표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이야말로 정국의 핵으로 등장한 만큼 진중한 원내전략을 모색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