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지르기’식 공약이 남발됐다. 전 국민에게 돈을 풀고, 세금을 깎아주고, 경제성도 따지지 않고 개발을 하겠다는 공약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경쟁적으로 발표됐다. 사상 최대 세수 결손이 예고될 만큼 국가재정은 비어가는데 선심성 공약에 수백조 원이 들어갈 판이다. 총선이 끝난 만큼 나라 살림을 망치지 않도록 기획재정부라도 공약의 옥석을 엄격히 가려야 한다.
유세 과정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일부 생활필수품 부가가치세 인하(10%→5%)를 제안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 국민 대상 1인당 25만 원, 가구당 평균 100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했다.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도 아닌데 전 국민에게 돈을 뿌리겠다는 발상은 큰 우려를 낳는다. 또 물가 잡기가 급한 것은 맞지만 조세의 근간인 부가세까지 낮추면 나라살림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미 ‘부자감세’까지 더해져서 지난해 56조 원의 세수펑크가 발생하지 않았나. 더구나 부가세를 깎아줘도 생필품 가격에 반영될지 미지수이다.
개발 공약들은 더 가관이다. 국힘과 민주당은 지향하는 바도 불분명한 철도와 도로 지하화 공약을 경합하듯 내놓았다. 민주당이 서울 올림픽대로 지하화 공약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국힘이 한강 남북의 자동차전용도로 모두 지하화 공약으로 대응하며 ‘밀리면 끝장’식 경쟁을 벌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6개 정당 254개 지역구 후보자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철도 노선 연장이나 역사 신설과 같은 개발공약은 2,000개가 넘고 재원은 554조 원에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말까지 24차례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면서 돈 풀기 약속을 했는데, 후속 조치를 위해 추린 과제만 240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성장의 발판인 연구·개발(R&D) 지원, 사회적 약자 보호와 같은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무분별한 감세·개발 정책부터 걸러내야 할 것이다. 기재부가 4월 10일 이전에 발표하도록 돼 있는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 발표를 총선 이후로 미룬 것을 보면, 기재부도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내년 재정전략, 세법 개정 마련을 앞두고 할 말은 하고, 지킬 것은 지켜내는 의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