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경기 김포시의 한 투표소를 이성빈(46)씨가 후련한 얼굴로 빠져나왔다. 이씨는 중국에서 지난해 5월 귀화한 결혼이주여성이다.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 잘못 찍으면 어쩌나 고민이 컸지만, 막상 해보니 쉽게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방금 전 줄을 설 땐 잔뜩 긴장했던 이씨는 훌륭하게 혼자서 '실전'을 치렀고, 투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손등에 도장까지 찍고 나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걱정도 컸지만 첫 투표가 남긴 감동도 컸다.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던진 한 표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씨는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당일인 이날 '생애 첫 투표'에 나선 시민들은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이주민(귀화자)과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만 18세를 넘겨 선거권을 얻은 청년들은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해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이성빈씨는 이번 투표를 위해 몇 달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이주 여성을 돕는 단체인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에 몇 번이나 전화해 투표 방법을 안내받았다. 선거 전날 저녁에는 다시 한번 유튜브로 관련 영상도 찾아보며 최종 예습까지 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이씨는 "이번 투표에서 다문화 가정에 혜택을 주는 공약과 더불어 교육 관련 공약을 유심히 살폈다"면서 "국민 개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치 체제가 신기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서울 동작구에서 투표를 마친 탈북민 조아현(가명·32)씨도 이번이 생애 첫 투표다. 조씨는 "북한에선 투표가 의무이지만, 저는 추방 대상으로 지목돼 단 한 번도 선거에 참여한 적이 없다"면서 "내가 행사하는 한 표가 지니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투표소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하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만 18세를 넘겨 선거권을 손에 넣은 청년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장을 찾았다. 성북구에 사는 정아영(19)씨는 "투표를 할 수 있다니 이제 비로소 성인이 된 게 체감된다"며 "내 손으로 뽑은 후보니까 공약도 좀 더 꼼꼼히 살피고 이전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송파구에서 투표한 김민수(19)씨 역시 "학교에서 하던 반장 선거보다 좀 더 책임감을 느끼며 선거에 임했다"며 "제가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둘러보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첫 투표를 끝낸 청년 유권자들은 '주거' '일자리' 등 청년의 삶에 밀접한 공약을 유심히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선 생일이 지나지 않아 아쉽게 투표하지 못했던 대학생 송주현(20)씨는 "청년 복지를 공약으로 앞세운 후보에게 눈길이 갔다"며 "거시 정책보다는 당장 제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 어떤 것들인지 공보물을 주의 깊게 봤다"고 강조했다. 정아영씨도 "전세사기 피해를 입는 대다수가 청년들이라, 주거 안정성이 높은 청년주택에 대한 지원 규모를 늘리겠다는 후보에 마음이 끌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