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처음 느낀 민주주의의 '손맛'... 청년·귀화자·탈북민의 인생 첫 투표

입력
2024.04.10 15:30
14면
선거교육 받고 투표소 찾은 이주여성
민주시민으로 한 표 행사하는 탈북민
공약 살피며 신중히 투표하는 청년들


"첫 투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10일 오전 경기 김포시의 한 투표소를 이성빈(46)씨가 후련한 얼굴로 빠져나왔다. 이씨는 중국에서 지난해 5월 귀화한 결혼이주여성이다.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 잘못 찍으면 어쩌나 고민이 컸지만, 막상 해보니 쉽게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방금 전 줄을 설 땐 잔뜩 긴장했던 이씨는 훌륭하게 혼자서 '실전'을 치렀고, 투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손등에 도장까지 찍고 나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걱정도 컸지만 첫 투표가 남긴 감동도 컸다.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던진 한 표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씨는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인생 첫 투표 치른 사람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당일인 이날 '생애 첫 투표'에 나선 시민들은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이주민(귀화자)과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만 18세를 넘겨 선거권을 얻은 청년들은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해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이성빈씨는 이번 투표를 위해 몇 달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이주 여성을 돕는 단체인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에 몇 번이나 전화해 투표 방법을 안내받았다. 선거 전날 저녁에는 다시 한번 유튜브로 관련 영상도 찾아보며 최종 예습까지 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이씨는 "이번 투표에서 다문화 가정에 혜택을 주는 공약과 더불어 교육 관련 공약을 유심히 살폈다"면서 "국민 개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치 체제가 신기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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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에서 투표를 마친 탈북민 조아현(가명·32)씨도 이번이 생애 첫 투표다. 조씨는 "북한에선 투표가 의무이지만, 저는 추방 대상으로 지목돼 단 한 번도 선거에 참여한 적이 없다"면서 "내가 행사하는 한 표가 지니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투표소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하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약 검토도 꼼꼼히

만 18세를 넘겨 선거권을 손에 넣은 청년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장을 찾았다. 성북구에 사는 정아영(19)씨는 "투표를 할 수 있다니 이제 비로소 성인이 된 게 체감된다"며 "내 손으로 뽑은 후보니까 공약도 좀 더 꼼꼼히 살피고 이전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송파구에서 투표한 김민수(19)씨 역시 "학교에서 하던 반장 선거보다 좀 더 책임감을 느끼며 선거에 임했다"며 "제가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둘러보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첫 투표를 끝낸 청년 유권자들은 '주거' '일자리' 등 청년의 삶에 밀접한 공약을 유심히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선 생일이 지나지 않아 아쉽게 투표하지 못했던 대학생 송주현(20)씨는 "청년 복지를 공약으로 앞세운 후보에게 눈길이 갔다"며 "거시 정책보다는 당장 제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 어떤 것들인지 공보물을 주의 깊게 봤다"고 강조했다. 정아영씨도 "전세사기 피해를 입는 대다수가 청년들이라, 주거 안정성이 높은 청년주택에 대한 지원 규모를 늘리겠다는 후보에 마음이 끌렸다"고 전했다.

김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