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에피스클리'가 이달 말부터 의료현장에 공급되면서 치료 비용이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에피스클리는 면역체계 이상 때문에 혈관 안에서 적혈구가 파괴돼 밤에 검은색 소변을 보는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치료제다. 오리지널(복제 대상) 약은 미국 기업 알렉시온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솔리리스'. 에피스클리가 오리지널의 절반 가격인 연 2억 원 수준으로 출시되자 솔리리스는 연간 4억 원에 달하던 약값을 30%가량 내렸다.
11일 제약·바이오 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에피스클리 출시는 솔리리스 가격 인하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오리지널 약과 똑같은 효능을 지니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치료 옵션(선택지)이 다양해졌다"며 "앞으로 의료 현장에서 에피스클리 활용으로 재정이 절감되면 건강보험 지원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환자의 몸속에선 파괴된 적혈구가 혈전 상태로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잘못 쌓이면 하지혈전부터 심부전, 심장마비, 뇌혈전까지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으로 진단받은 모든 환자(약 450명)가 건보에서 솔리리스 약값을 지원받으면 좋겠지만, 지금까진 이런 합병증을 겪은 130여 명만이 지원받았다. 건보 재정의 한계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치료제 '울토미리스'가 나왔다. 격주 투약해야 하는 솔리리스와 달리 울토미리스는 두 달에 한 번만 맞아도 된다. 하지만 연간 약값이 약 4억8,000만 원으로, 솔리리스보다 20%나 비싸다. 결국 건보 지원 대상이 아닌 환자들은 초고가 약들을 자비로 쓰거나, 합병증이 나타나길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런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염두에 두고 에피스클리 개발과 출시 일정에 속도를 냈다. 올 1월 품목허가를 받은 후 신속 공급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3개월여 만에 제품을 출시했다. 장 교수는 "합병증을 겪지 않아 건보 지원을 받지 못하는 환자가 170여 명"이라며 "이들에게 치료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고품질 바이오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환자에게 처방되게 하는 바이오시밀러의 사업 가치를 극대화했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바이오시밀러 출시가 늘면서 약값 절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삼정 KPMG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바이오시밀러 시장 동향과 기업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만 2018~22년 5년간 바이오시밀러가 약 340억 달러의 매출을 냈고,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의료지출액 약 400억 달러를 절감했다. 또 2023~27년 절감액 규모는 1,810억 달러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에피스클리처럼 희소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는 약값을 대폭 끌어내려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개발(R&D) 비용은 많이 들지만 정작 약을 쓸 환자가 적은 희소질환 약은 대부분 초고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환자 부담이 큰 동시에 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압박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아닌 희소질환 치료제의 바이오시밀러는 기술을 활용해 환자 개인은 물론 의료 재정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따뜻한 바이오'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