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휴가에 희망퇴직까지… 사직은 전공의가 했는데 피해는 병원 노동자 몫

입력
2024.04.10 04:30
의료현장에 구조조정 불안감 팽배
아산병원 희망퇴직 확산될라 우려 
"병원 경영난을 직원에 전가" 비판
전공의 무책임 행태에 불만도 커져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 집단행동이 8주째 이어지면서 진료 축소에 따른 재정적 타격이 의료계 전반에 연쇄적으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수익 감소로 병원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직원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무급휴가를 떠났다. 서울아산병원은 ‘빅5 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는다. 사직은 전공의가 했는데 애꿎은 병원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제약 및 의료기기 업계도 매출 감소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무급휴가에 희망퇴직까지… 의료계 불안 가중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이달 1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대상자는 올해 연말 기준 50세 이상이면서 근속기간이 20년 이상인 일반직 직원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전체 의사 수(1,676명) 대비 전공의(578명) 비율이 34.5%로 높아 전공의 이탈로 인한 손실도 컸다. 전공의가 집단 사직한 2월 20일부터 3월 30일까지 40일간 의료분야 순손실이 51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미 서울아산병원은 최대 100일 한도 내에서 무급휴가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의사를 제외한 전체 직원 7,000여 명 중 2,800명이 평균 5~6일간 무급휴가를 사용 중이다. 의료현장에선 무급휴가에 이어 희망퇴직까지 조기에 시행되자 다음 차례로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희망퇴직 제도는 병원 운영 상황과 직원들 요청을 검토해 2019년과 2021년에도 시행했다”며 “퇴직자 규모를 정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신청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도 서울아산병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인력 감축 조치가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최근 대한병원협회 조사 결과 전공의 사직 이후 3월 31일까지 병상 500개 이상을 보유한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의료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38억 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당 평균 85억 원에 달한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진료 정상화도 염두에 둬야 하기에 인력 구조 재편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언제 돌아올지 모를 전공의들을 기다리며 무한정 비상경영체제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곳간을 메우고 있다. 일례로 한 지역대학병원은 일반 병동 간호사를 중환자실에 집중 배치했다. 중환자실 간호관리료 차등제에 따라 중환자실 병상 수 대비 간호 인력을 많이 확보하면 등급이 높아져 가산된 수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본원과 보라매병원을 포함해 전체 86개 병동 중 10개를 폐쇄했고, 무급휴가도 국립대병원 중 가장 처음으로 실시했다.

병원들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병원에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공급하는 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마취제, 진통제, 수액 등 수술용 의약품과 장비 납품이 전공의 집단이탈 이전과 비교해 30~40%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의약품 처방도 크게 감소해 매출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서울대병원은 의약품 유통업체들에 대금 결제 시기를 3개월에서 6개월로 미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5000억 재정 투입… "의사들도 책임져야"

정부는 지난달 예비비 1,285억 원을 편성하고 건강보험 재정 1,882억 원을 두 달째 투입하는 등 현재까지 총 5,049억 원을 비상진료체계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간신히 의료대란은 막고 있지만,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공백을 국민 혈세로 메운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사고는 의사가 치고 뒷감당은 국민 몫인가”라며 “의료현장의 혼란을 초래한 것은 의사들인데 그 불편과 재정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관리ㆍ감독 책임이 있는 병원들이 전공의를 복귀시키거나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노력 없이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한다는 지적도 많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병원이 전공의를 어서 데려와 진료를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1차적으로 환자에게, 2차적으로 병원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진료현장을 이탈한 의사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현장에서 불만이 더 커지고 있다. 면허정지 행정처분은 보류됐고, 서울아산병원 희망퇴직 대상에서도 의사는 제외됐다. 환자와 동료 의료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의대 증원 백지화’만 요구하는 건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남의 밥그릇 빼앗는’ 행태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경민 보건의료노조 서울아산병원지부장은 “그동안 병원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 왔지만 더는 용인할 수 없다”며 “전공의 인력 운용 문제를 제대로 짚어보고 병원과 정부에 관련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