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1980년대 이후 꾸준하게 통합이 진행됐다. 상품과 서비스 교역은 물론 국제적 자본이동이 크게 늘었다. 또 사람과 정보의 이동도 활발했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상호 연결됐다. 2022년 세계 인구의 약 66%가 인터넷을 사용했다. 국제무역으로 여러 나라의 소득이 증가하고 빈곤은 감소했다. 공급망도 고도로 국제화되고 분업화됐다. 신흥 시장은 점차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커졌다. 1995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74%를 차지했으나, 2019년에는 그 비중이 약 50%로 감소했다. 그런데 이제 세계 경제는 분절의 기로에 섰다.
세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정체됐다. 은행들이 자본건전성 제고를 위해 채무비율을 낮추면서 국제적 자본이동이 줄었다. 수요감소와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 변화로 무역도 규모가 축소됐다. 한편 세계화로 노동자들의 소득이 줄어들고 상위 1%의 소득은 증가하자 세계화에 대한 불만은 정치적으로 포퓰리즘을 강화했다. 브렉시트는 이런 흐름의 한 예다.
2017년부터 본격화된 신냉전 속에서 2018년 미중 간 무역분쟁은 세계 경제의 정치화를 가속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많은 국가가 의약품과 식료품 수출을 제한해 글로벌 경제 질서에 균열이 커졌다.
게다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더 고조되자, 세계 경제는 지정학적 블록으로 나뉘게 된다. 서방 측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에너지와 농산물 시장에 타격이 있었다. 또 국가안보를 고려한 무역 규제가, 특히 하이테크 분야에서 2020년에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효율성보다는 국가전략에 따라 생산기지 위치를 결정했다. 리쇼어링, 프렌드쇼어링, 니어쇼어링 등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경제분절화로 인한 부작용은 크다. 미중 무역분쟁은 보호주의적 조치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여준다. 고관세는 국내 소비자와 수입업체에 부담이 되고, 국내 고용에도 피해를 줬다. 무역의 분절화는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제기회를 줄인다.
기술의 분절화도 나타났다. 국가 간 전략적 경쟁으로 기술확산과 지식공유가 힘들게 됐다. 국제적인 노동이동 장벽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 효율성도 감소하게 됐다.
국제금융의 분절화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글로벌 금융통합으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서 여러 나라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지정학적 블록화가 심화되면 개별 국가들은 금융위험의 분산이 어렵게 된다. 이제 자본이동에 따른 이익과 리스크는 각국이 속한 블록에 이전된다. 금융분절화 시대에서는 금융규제와 자본이동에 대한 감독이 더 국소화돼 세계 금융의 전반적 감독은 더 힘들어진다. 국제적 공조의 틀이 약해지면서 금융위기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가부채 해결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글로벌 지불시스템의 분절위험도 커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주요 러시아 은행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로부터 배제됐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 다른 나라들도 국제 금융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지 모른다. 세계 경제 분절화로 대외준비자산 선호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3,000억 달러를 동결함으로써 서방에 비우호적인 나라들은 준비자산 운영에서 달러자산 등 서방 측 자산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계 경제의 분절화 과정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것이다. 기후변화나 팬데믹 같은 글로벌 실존적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 파국적인 분열을 피하면서 글로벌 공공재의 공급, 공정경쟁, 빈곤층 보호 등에 관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실용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