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MBC는 '청소년이 보는 한국의 대스타'라는 주제로 앙케트를 진행했다. 대상은 서울지역 청소년 500명이었다. 이 조사에서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은 5위, '농구 천재' 허재는 3위를 기록했다. 2위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최진실이었다. 그렇다면 1위는 누구였을까. 연예계·스포츠계의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사람은 놀랍게도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응답자의 36%가 그를 선택했다. 오늘로 비유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유재석·손흥민·방탄소년단을 제치고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1993년은 주목할 만한 해다. 오랜 군부 집권을 마치고 문민의 시대를 연 첫해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묵은 개혁 과제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첫 국무회의에서 자기 재산을 공개하며 공직자 재산공개의 서막을 열었고, 2주 뒤에는 권영해 국방부 장관과의 오찬 자리에서 대뜸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 해임을 알렸다. 전두환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척결이 그렇게 시작됐다. 하나회 출신 장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김 대통령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려야 한다"며 두 달도 안 돼 40개가 넘는 별을 날렸다. 그해 여름에는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관철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90%를 웃돌았다. 이러니 청소년들도 열광했다.
일각에선 그가 정책 후과를 고려하지 않고 '깜짝쇼'만 벌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공직자 재산공개만 하더라도 30년 전부터 준비된 정책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4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김영삼은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재산을 공개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 나라든 공직자는 깨끗해야 한다는 열망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감상은 당시 그가 출간한 기행문인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1993년에서 31년이 지난 지금의 풍경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어느 쪽에서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풀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정쟁만 일삼다가 선거가 닥치니 선심성 공약을 쏟아낸다. 신혼부부에게 얼마를 주겠다, 대학 공짜로 다니게 해주겠다, 부가세를 깎아주겠다. 이젠 하다 하다 철도를 지하화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뭐, 미국처럼 기축통화국에 자원까지 많은 나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예산 퍼주고 세금 깎아주는 데 따른 청구서는 언젠가 반드시 날아온다. 그 채무 이행의 책임은 오늘날 2030 이하 세대가 질 가능성이 크다. 청년들이 "한동훈도 싫고 이재명도 싫고 조국도 싫다"며 여야 모두를 불신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총선은 우리 정치권의 부실한 정책 역량과 빈곤한 철학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쟁 기능만 기형적으로 발달한 이들은 남의 흠집 잡을 땐 귀신같이 자료를 찾고 논리를 만들면서도 정작 민생 정책은 형편없는 수준의 퍼주기를 답습하고 있다. 이번 선거가 어떻게 끝나든 정치권을 향한 2030세대의 불신과 환멸은 계속될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방법은 단 하나, 문민정부가 1993년 보여줬던 것처럼 한국 사회 구조개혁에 힘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