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 3㎏으로 85명이 먹었다'로 대표되는 급식 비리와 시설 무단 점거, 횡령 등의 의혹으로 논란이 됐던 세종시 한솔동의 국공립어린이집(옛 송원어린이집)이 폐원될 것으로 보인다. A원장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세종시가 위수탁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고, 이후 새 원장 공모를 통해 어린이집을 존속시키는 것보다 폐원 후 다른 복지시설로 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사태는 10개월여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지만, 세종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재확인된 낮은 수준의 행정을 혁신, 고도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세종시는 행정수도를 내다보는 도시다.
임숙종 세종시 여성가족과 과장은 8일 "A원장과의 위수탁 계약 해지를 위한 내부 절차를 밟고 있다"며 "A원장이 물러나면 새로운 원장을 공모해 해당 어린이집을 존속시키기보다 폐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의 운명은 남은 원생 부모들의 의견 등을 고려해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폐원될 경우 해당 시설은 도서관, 돌봄센터 등 지역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날 현재 해당 어린이집의 원생은 5명이다. 사태 발발 직전의 80명 수준에 비하면 크게 쪼그라들었다.
임 과장은 "작년 말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만큼 시설 상태는 훌륭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서 적응을 마친 원생들이 다시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세종시 출범 초기 대비 감소한 지역 어린이집 수요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이 다시 문을 열든, 다른 시설로 활용되든 세종시가 A원장과 결별하는 만큼 지난해 6월 어린이집 교사 10여 명의 집단 퇴사로 촉발된 송원어린이집 사태는 마무리되게 됐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보육 공백으로 아이를 충남 공주의 한 어린이집에 맡긴 학부모 김모(37)씨는 "수백 명이 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끌던 어린이집이 원장 하나 때문에 쑥대밭이 됐고, 그 때문에 지역의 자랑이던 어린이집이 결국 사라지는 것이냐"며 "원장 선정과 사태 대응 등 일련의 과정에서 난맥상을 보여준 세종시 행정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10개월 동안 세종시가 보여준 사태 해결 능력은 ‘제로’(0)에 가깝다. 원장 공모 과정에 많은 이들이 의문과 이의를 제기했지만 무시됐고, A원장과 교사들 간의 갈등으로 보육공백까지 발생했음에도 신속 대응하지 못했다. 또 최민호 시장으로부터 감사의뢰를 받은 감사위원회도 소극적인 자세로 감사에 임하면서 사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논란을 부추겼다.
해당 어린이집 운영위원을 지낸 한 학부모는 "A원장이 조작한 서류를 감사위원회에다 제출한 사실을 확인하고 세종시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세종시는 오히려 우리에게 역정을 냈다"며 "세종시가 A원장에 대해 공무집행 방해나 사문서 위조로 충분히 수사 의뢰할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도 무력한 모습만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후 참다못한 학부모와 퇴직 교사들이 세종시를 대신해 A원장을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세종시의 안일한 행정이 논란을 만들었고, A원장의 각종 고소 전에 사비를 들여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세종시에도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장수찬 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상명하복의 공직사회 특성상 관리자의 업무 능력이 저조한 조직에서 높은 수준의 행정을 기대하기 힘든데, 세종시의 행정도 시대 흐름이나 시민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민관 협치 강화나 중앙부처와의 교환 근무 확대로 조직에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