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경제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촉발한 연쇄적인 악순환을 겪고 있다. 경제의 약 20%를 차지하던 부동산‧건설부문 침체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구직난을 불러일으켰고,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부의 효과'까지 겹쳐 심각한 소비 부진이 나타나고 있다. 부의 효과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발생하는 소비 위축을 뜻한다. 10억 원을 호가하던 주택가격이 어느 날 7억 원으로 내려간다면 이 집의 소유자가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자주 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더 나타났으니, 바로 저출산 현상의 심화다. 최근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를 보면, 2023년 중국의 합계출산율은 1.1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온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2명인 것을 고려하면 높은 편이지만,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2,800달러로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 이야기하다가 1인당 국민소득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인데, 첫 번째 이유는 기회비용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국민소득이 4만 달러에 달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남성과 같다고 가정하면 출산 및 양육에 따른 손실은 10만 달러를 상회할지 모른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며,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이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 출산율이 대부분 2.0명을 하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출산율이 1.1명까지 내려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직접적인 이유는 1980년대의 대규모 여아 낙태로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급격히 진행되는 가운데 가계의 부양부담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한국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은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계기로 강력한 노동시장의 호황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023년 한국의 고용률은 1963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최근 중국의 젊은이들은 1978년 이후 가장 심각한 실업사태로 고통받고 있다.
선진국과 중국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베이비부머가 겪은 인생 경로가 달랐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중국의 신생아 출산 추이를 보여주는데, ‘파란 박스’는 이른바 대약진운동 시기를 나타낸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15년 내에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고 단기간에 농업과 공업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곡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식량 배분마저 차질을 빚으며 약 3,0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성인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여력이 없어, 1959년 출생 아동 수는 1957년의 절반까지 줄어들었다. 대약진운동이 중단된 1960년 이후 출산율이 반등해 1975년까지 약 4억 명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중국의 베이비부머다. 문제는 이들이 어려서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은 물론 교육도 받지 못한 데 있다. 특히 문화혁명(1966~1976년)이 베이비부머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 문화혁명 10년 동안 모든 대학과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문을 닫았고, 도시의 지식인들이 지방으로 쫓겨났기 때문에 베이비부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중국은 경제 발전에 가장 필요한 자원, 지식 자원의 대대적인 파괴를 경험한 셈이다.
아래의 <그림>은 2015년 기준 근로자들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중국은 28.8%로 주요 경쟁국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섬유나 의복, 신발 같은 경공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근로자들의 교육 수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처럼 새로운 신기술이 출현할 때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컴퓨터와 인터넷 자동 공작기계의 사용법 등은 기본적인 어학 및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교육 수준에 따른 소득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중국 베이비부머 모두가 빈곤한 것은 아니다. 운 좋은 일부는 문화혁명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행운은 도시에 거주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 일부에게만 허용이 됐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 도시에 거주하는 중국인 비중은 17.5%에 불과했다.
그 결과, 중국 노인들 사이에선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출현했다. 65~69세의 도시 거주자 연간 소비는 2011년 7,300위안(약 1,130달러)에서 2020년 1만4,400위안(2,087달러)으로 늘어났다. 물론 매우 적은 돈이지만 도시지역의 사정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동일 연령대 농촌 거주자의 소비는 같은 기간 3,200위안(약 495달러)에서 7,100위안(1,029달러)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참고로 2017년 세계은행은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소득 수준인 빈곤선(Poverty line)을 하루에 1.9달러, 연간 693.5달러로 정의한 바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국 농촌 노인들은 2010년대 중반에서야 빈곤선을 탈출한 셈이다. 빈곤선을 이제 막 벗어난 사람들에게 ‘노후 준비가 충분한가’라고 묻는다면 좋은 답을 듣긴 힘들 것이다.
심각한 노후 빈곤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대응은 미비하기만 하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연금 역할을 하는 양로보험 적립금은 단 5조8,000억 위안(약 8,799억 달러)에 불과하다. 가입자가 9억4,000만 명이니 1인당 고작 936달러가 적립돼 있는 셈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양로보험의 주식 투자를 허용하고, 또 사회보장기금(SSF)에 기금운용을 위탁하는 등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투자 확대가 수익률 개선보다는 주식시장 부양용으로 집행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장기성과가 개선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것 같다.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자면, 부모 세대의 노후 빈곤을 목격한 젊은 세대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저축을 늘리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2018년 이후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해외 판로가 여의치 않은 것도 문제를 심화시킨 요인이다. 중국 정부가 노후 빈곤에 대한 우려를 덜고 소비심리를 개선시키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나, 현재까지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리는 전통적인 해법을 추진하고 있어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