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5일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식당에 첫 저녁 손님이 들어왔다. 다소 뻣뻣한 자세로 손님을 맞은 홀 직원 임승찬(25)씨와 조재범(21)씨는 “자리는 아무 곳이나, 주문은 키오스크를 이용하시면 된다”라고 안내하더니 이내 입을 닫았다.
김치찌개를 주문한 손님이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들은 치열하게 일하는 중이었다. 셀프바 반찬 뚜껑이 덜 닫히면 재범씨는 금세 각을 맞춰 정돈했다. 승찬씨의 번개 같은 손놀림에 에어컨에는 작은 먼지도 앉을 틈이 없었다. 일이 없어도 시선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고정.
겉으론 다정하지 않아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두 사람은 ‘경계선 지능인’이다. 지능지수(IQ)가 지적장애인 수준(70점 이하)과 평균(85점 이상)의 경계에 있어 각종 복지지원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다. 장애인의 달인 4월 첫날, 한 식당은 “천천히 해도 괜찮다”며 청년들을 보듬었다. 상호도 ‘슬로우’(slow·느리다) 식당이다.
이날은 승찬씨와 재범씨가 청년밥상 문간 슬로우점에서 일한 지 닷새째 되는 날이다. 그간의 업무 소감은 둘 다 똑같았다. ‘이렇게’ ‘오래’ ‘마음 놓고’ 일해 본 건 처음이라고. 이 식당은 느린 학습자로 통하는 경계선 지능인 청년 10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
경계선 지능인의 두드러진 특징은 인지 및 반응속도가 평균보다 느리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심하게 괴롭힘(승찬)을 당하고,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4번 떨어지기도 한다(재범). 중증이 아닌 탓에 대중은 잘 모르지만 전체 인구의 약 14%에 달할 정도로 수도 적지 않다. 청년층만 약 93만 명으로 추정된다.
성인으로서 겪는 고민도 여느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취업이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는 것도, 넘어서 버티는 것도 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승찬씨는 인쇄 회사에 출근했지만 복사처럼 간단한 일도 버거워 그만뒀다. 재범씨도 고교 졸업 후 면접에 붙은 회사에 출근 일자를 여러 차례 문의하자 합격이 취소돼버렸다. 좌절이 거듭될수록 더욱 위축되고, 세상과의 교류도 뜸해져 고립되는 식이다.
그러나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의 취업 문제는 통계는커녕 실태조사조차 한 적이 없다. 외형으로 딱 드러나는 질환이 아니기에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청년재단 등이 이달부터 취업지원 시범 사업을 진행하며 겨우 발을 뗀 상태다.
정부도 단체도 이제 막 관심을 보인 이들에게 사회적 협동조합인 청년밥상 문간의 이사장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가 선뜻 손을 내밀었다. 원래 밥 굶는 청년의 끼니를 챙기려 만든 식당은 올해 혜화동에 5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었는데,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도 직원으로 채용해 자립을 돕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허투루 할 수는 없었다.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은 석 달을 꼼꼼히 준비했다. 주문, 청소, 음식 서빙을 배우고 본점에서 7주간 실습도 했다. 집중력이 부족한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을 고려해 근무 일정을 2, 3시간 단위로 짰으나, 청년들은 6시간도 거뜬히 해냈다. 일을 향한 열정이 세간의 편견을 압도한 것이다.
승찬씨는 “현금 계산을 한 손님한테 실수로 1,000원을 더 거슬러 줘 아찔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매니저는 “네가 콜라 한 잔 먹었다고 생각하라”고 농을 치며 잔뜩 얼어 있던 그를 다독였다. 괜찮다고, 천천히 속도에 맞춰 배우면 된다는 든든한 응원 같았다.
일주일도 안 된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의 인생은 싹 바뀌었다. 첫 취업 무산 후 집에서 무기력만 곱씹던 재범씨는 “일을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내가 좋다”며 생활 습관의 변화를 언급했다. 승찬씨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른 덕에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다. 이 신부는 “따뜻하고 든든한 일터만 마련되면 조금 부족한 청년들도 충분히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긴장되지 않았어?” “응.” 다른 경계선 지능인 직원의 물음에 재범씨는 으레 그렇듯 짧게 답했다. 달라진 점은 씩씩한 말투였다. 그러고는 마저 일을 하려 다시 앞치마를 질끈 동여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