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만남이 소득 없이 끝난 이후 의정 갈등이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의원선거(10일)가 코앞이라 당분간 별다른 변화 없이 숨고르기를 하다 선거가 끝난 뒤 정부와 의사계 모두 새로운 전략을 짤 것으로 전망된다. 잠시 누그러진 긴장이 다시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전공의 행정처분을 보류하고 의대 증원 재조정 여지를 열어둔 데 이어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섰지만, 총선 정국이 겹치면서 좀처럼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할 경우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일 동력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 향후 권력 지형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의사들이 강경한 목소리를 내 의대 증원을 철회시키거나 증원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수도권 대학병원 한 전문의는 “의사들은 정부 여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의대 증원 정책을 꺼냈다고 생각한다”며 “총선 이후를 벼르고 있는 의사도 많다”고 전했다.
반대로 정부는 의대 증원이 총선용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혹여 총선 패배 후 증원 규모가 조정되거나 정부 기조에 변화가 있다면 정치적 타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흔들릴 정책이었다면 정부가 의사들한테 진작 굴복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하며 “반드시 의료개혁을 완수해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를 불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정 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했으나 의사들의 비협조로 별 성과를 얻지 못한 만큼 총선 후에는 강경책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 대통령 면담에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내부 공지를 통해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저희 쪽에선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했다. 전공의들이 이렇게 계속 ‘무대응’으로 대응한다면 정부 입장에선 전공의 복귀를 무한정 기다릴 수 없으니 행정처분 절차를 개시할 수도 있다.
의사들은 대통령과 전공의 면담 이후 불거진 내부 균열 봉합에 나섰다. 사전 협의 없이 대통령을 만난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을 향해 일부 전공의들은 “탄핵”까지 언급할 정도로 격앙됐고,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인도 “내부의 적”이라는 표현으로 박 위원장을 에둘러 저격했다. 하지만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두 분 다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면서 “내부 불화는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다소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이라 앞으로 소통을 더 긴밀하게 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의협은 총선이 끝나면 11일이나 12일에 의협과 대전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이 참여하는 합동 기자회견도 열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의료계에 통일된 의견을 달라 요청한 것에 대해 대응하는 차원”이라며 “의협 비대위가 중심에 있고 나머지 단체들이 힘을 합쳐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의협 비대위 회의에 참석해 윤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을 공유했다. 김 위원장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를 포함한) 대전협 성명서 요구사항을 대통령에게 자세히 말씀드렸다고 전달받았다”고만 설명했다.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글을 남긴 박 위원장과 달리 의협 비대위는 면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전공의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협의 입장에 대해 대통령이 답변했으며 그에 박 위원장이 호응해 직접 의견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만남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의대 증원 재조정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면 대학별 정원 배정 후속 절차가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